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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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박원 작가
  • 승인 2020.04.11 2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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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이 필 때
라일락이 피는 4월
라일락이 피는 4월

사월은 잔인한 계절이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왠지 피부에 닿는 느낌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이 구절이 T.S 엘리엇이란 영국 시인의 '황무지'라는 시의 첫 구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이 구절을 읽고 다음 문장이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무슨 혁명이나 유혈사태 폭탄테러 아니면 최소한 끔찍한 연정으로 일어난 살인사건이나 배신 등이 연상되었습니다.

다음 문장이 뭘까 바로 읽어나갔는데 '에게게! 이게 뭐지' 라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사월이 가장 잔인한 것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월이 잔인한 것은 겨우내 죽었던 생명이 봄비를 맞고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에는 욕망과 추억이 있기에 고통이 따릅니다. 모든 생명이 언 땅속에 묻힌 겨울이 오히려 따뜻할 수 있습니다. 욕망과 추억이 뒤섞이기에 고통스럽다는 말은 청춘시절이라면 절감하는 구절입니다.

T.S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의 첫 부분입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렸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현대시 중에서 가장 긴 시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 이 시가 발표된 것은 아마 1922년 1차 대전이 끝나고 2차 대전이 싹을 틔우는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영국은 런던의 북쪽 아일랜드 공화국 IRA가 폭탄 테러와 요인 암살 교전으로 단 하루로 편한 날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황폐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체는 433행으로, '죽은 자의 매장', '체스 놀이', '불의 설교', '익사', '천둥이 한 말' 등 5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마지막은 황무지에 단비가 다가 오고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이는 현대문명이 패망의 구렁텅이에서도 구원은 오고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첫 문장은 전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끝까지 읽어낸 사람은 가장 적을 것 같습니다.
한 구절로 사람을 휘어잡아 놓고는 어렵고 난해한 현대시의 미궁에 내팽개쳐버립니다. 그러고도 작가는 시의 대중화 운동을 위해 캠페인을 벌인 작가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도 난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