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묻은 백금 항아리
상태바
땅에 묻은 백금 항아리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4.03.25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전래동화 이야기

 

어느 고을에 가난한 선비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선비는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글공부를 하였고, 그의 아내는 곁에서 같이 밤을 지새우며 바느질을 하였습니다. 아내가 바느질로 가난한 살림을 꾸려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비가 과거 시험을 몇 달 앞두고 깊은 병이 들었습니다. 선비는 어린 아들의 손을 꼭 붙들고 아내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죽을 것 같소. 이 어린 것을 남겨두고 저 세상으로 가야하다니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구려.”

선비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렇게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공부를 했는데 과거 시험도 못보고 세상을 떠나려하다니 억울하지도 않습니까? 어서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세요.”

아내도 선비의 몸을 흔들며 울었습니다.

“부디 이 어린 것을 잘 키워주시오. 그리고 나를 대신하여 꼭 과거에 급제하도록 열심히 공부를 시키시오.”

“안 돼요. 이대로 그냥 가시면 안 돼요.”

선비의 말에 아내는 더욱 몸부림을 치며 울었습니다.

“나는 이제 내 운명이 다했다는 걸 알고 있소. 그러니 부인께서는 내가 마음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내 부인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소.”

선비가 어렵게 눈을 뜨고 아내를 쳐다보았습니다.

“무슨 부탁이십니까?”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구걸은 하지 마시오. 그리고 일을 하지 않고 공으로 얻는 재물은 독약과 같으니, 부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시오. 이것이 바로 선비가 지켜야할 도리요. 우리 아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시오.”

선비는 이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선비의 아내는 남편의 마지막 유언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습니다.

그 후 선비의 아내는 열심히 삯방아를 찧어주고 식량을 구해왔으며, 바느질을 하여 붓과 벼루와 책을 사서 아들에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선비의 아내는 홀로 방아를 찧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추녀 끝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땅속에 있는 무엇인가에 부딪칠 때 나는 소리였습니다.

방아를 찧다 말고 선비의 아내는 얼른 땅을 파보았습니다. 그 땅속에서는 항아리가 나왔습니다.

“어머나! 이게 뭘까?”

선비의 아내는 무심결에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았습니다. 그 속에는 백금이 하나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번쩍이는 흰빛이 광채를 발하자, 선비의 아내는 기뻐서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고생을 하지 않고도 아들을 훌륭하게 공부시킬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선비의 아내는 그 순간 문득 남편이 죽을 때 한 말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공으로 얻는 재물은 독약과 같은 것이다.’

이 말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선비의 아내는 파냈던 백금 항아리를 도로 땅속에 파묻었습니다.

“그래, 이 백금 항아리가 우리 아들을 죽이는 독약이 될지도 모르지. 갑자기 많은 재물이 생기면 자연적으로 게을러지게 되는 거야. 우리 귀한 아들에게 게으름을 가르칠 수는 없지.”

집으로 돌아온 선비의 아내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백금 항아리를 도로 땅속에 묻은 일을 백 번 잘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선비의 아내는 먹을거리가 떨어졌을 때, 너무 힘이 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그 백금 항아리가 눈에 어른거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당부를 무시하고 얼른 그 백금 항아리를 캐내어 가난을 면하고 싶은 충동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곤 하는 것입니다.

정말 견디기 힘들 때 선비의 아내는, 밤에 몰래 방앗간으로 달려가 백금 항아리를 캐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당부를 생각하며 다시 묻어버렸습니다. 그러기를 몇 번 거듭하다가, 이제 다시는 파내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묻어놓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안 돼! 저 백금 항아리는 독약이다. 저 백금 항아리 때문에 우리 아들이 과거시험에 떨어지게 할 수는 없다.”

집으로 돌아온 선비의 아내는 눈을 꼭 감고 누웠습니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날수록 백금 항아리가 눈앞에 어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선비의 아내는 굳게 마음을 먹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로 하였습니다. 땅에 묻어둔 백금 항아리를 완전히 잊어버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멀리 이사를 간 선비의 아내는 더욱 열심히 삯방아와 삯바느질을 하면서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키운 보람이 있어, 그 아들은 커서 과거에 급제를 하였습니다. 그 해 선비의 제사가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아들을 앉혀놓고 눈물을 흘리며 백금 항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결국 그 백금 항아리가 너를 키운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다 듣고 난 아들이 말하였습니다.

“어머니, 그때 그 백금을 처분하여 살림에 보태 썼다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으셔도 되었을 텐데요.”

그러자 선비의 아내는 결연한 태도로 자세를 바로잡으며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그동안 고생고생해가며 너를 키운 보람으로 이제 과거에 급제한 아들을 두게 되었다. 만약 그때 백금을 팔아 살림에 보탰다면 너는 지금 훌륭한 선비가 아닌 도둑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백금 항아리가 우리에게 백금보다 더 소중한 큰 교훈을 준 것이다. 사람은 본디 가난이 무엇인지 알아야 참다운 재물의 가치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자기 손에 들어오는 재물은 재앙의 근원이니, 앞으로 벼슬자리에 나가서도 반드시 이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어라. 이러한 것은 모두 네 아버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비의 아내는 아들에게 한 바탕 훈시를 하였습니다.

“어머님! 제가 어머님의 그렇게 깊은 뜻을 미처 몰라보았습니다. 거듭 명심하여 재물에 대한 욕심을 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움켜쥐었습니다. 거친 일로 손마디가 굵어진 그 손이야말로 백금 항아리보다 더 고귀한 보물같이 느껴졌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고 번 돈은 손으로 물을 움켜쥐듯 모이지 않고 쉽게 빠져 달아납니다. 피땀을 흘려 번 돈이라야 자기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불노소득은 그 사람을 망치게 하는 당의정임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