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어느 날, 이어폰을 끼고 거리를 걷다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마음을 금세 뺏겨본 적이 있다.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노래 가사 때문이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노래가 나오는 동안 마치 영화에서처럼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와 그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내 앞에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노래 가사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그대를 날이 저물도록 기다리는 이유는 내가 살아내기 위해서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라도 그대를 기다리지 않으면 보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다. 그것은 때로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도 그렇다. 때때로 가슴 터질듯한 그 무엇이 있다면 이미 작가로서의 감성을 타고난 사람이다. 발명왕 에디슨의 말처럼 필요한 것은 이제 나머지 99%의 노력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에게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은 쉽지 않다. 분명 아니라고 하면서도 글재주는 타고 나야 하는 것 같게만 느껴진다.
왜 그럴까? 이유가 있다. 잘 쓰고, 멋있게 쓰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머리나 가슴보다 손끝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하루 두세 번 먹는 밥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도 쌀을 씻고 물을 부어 불에 올리는 과정이 있다. 라면 또한 어떤가, 물을 끓이고 면과 스프를 넣은 뒤 최소 3분에서 5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은가?
아무리 급해도 ‘우물에서 바로 숭늉을 찾을 수 없듯’ 일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순서가 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고 또 쓰면 되지! 순서는 무슨 순서?’라고 생각한다면 돌아오는 건 언제나 상처뿐이다. ‘들이대!’라는 구호 아래 스스로 부딪치고 깨지고 아파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언제나 좌절과 절망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