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도 전에 뛰어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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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도 전에 뛰어갈 수는 없다
  • 지호원
  • 승인 2019.10.2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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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원작가의 글쓰기 강좌③
일러스트_정진웅
일러스트_정진웅

 

가을 어느 날, 이어폰을 끼고 거리를 걷다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마음을 금세 뺏겨본 적이 있다.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노래 가사 때문이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노래가 나오는 동안 마치 영화에서처럼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와 그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내 앞에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노래 가사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그대를 날이 저물도록 기다리는 이유는 내가 살아내기 위해서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라도 그대를 기다리지 않으면 보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다. 그것은 때로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도 그렇다. 때때로 가슴 터질듯한 그 무엇이 있다면 이미 작가로서의 감성을 타고난 사람이다. 발명왕 에디슨의 말처럼 필요한 것은 이제 나머지 99%의 노력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에게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은 쉽지 않다. 분명 아니라고 하면서도 글재주는 타고 나야 하는 것 같게만 느껴진다.

왜 그럴까? 이유가 있다. 잘 쓰고, 멋있게 쓰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머리나 가슴보다 손끝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하루 두세 번 먹는 밥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도 쌀을 씻고 물을 부어 불에 올리는 과정이 있다. 라면 또한 어떤가, 물을 끓이고 면과 스프를 넣은 뒤 최소 3분에서 5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은가?

아무리 급해도 ‘우물에서 바로 숭늉을 찾을 수 없듯’ 일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순서가 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고 또 쓰면 되지! 순서는 무슨 순서?’라고 생각한다면 돌아오는 건 언제나 상처뿐이다. ‘들이대!’라는 구호 아래 스스로 부딪치고 깨지고 아파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언제나 좌절과 절망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