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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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 이영재 기자
  • 승인 2020.02.02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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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속 작은 위로를 주는 대학로 뮤지컬 '빨래'
출처: 씨에이치수박
출처: 씨에이치수박

마음이 너무도 지칠 때, 무언가 위로가 필요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까? 누군가는 지친 마음을 쉬기 위해 잠시 잠을 청할 수도, 누군가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하며 마음을 정리하기도 하고, 세제 향에 자신을 맡긴 채 빨래를 하기도 한다. 

여기,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줄 뮤지컬 '빨래'가 있다. 복잡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도, 2시간 동안 배꼽 잡고 웃을 수 있는 코믹극도 아니지만, 우리의 삶을 그리고 있는,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법한 경험을 토대로 한 잔잔한 힐링 극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잔잔한 힐링 속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보게 하는 OST, 삶에서 나오는 진솔한 웃음 코드까지 모든 걸 잡은 뮤지컬이다. 

뮤지컬 '빨래'는 서울살이하는, 다양한 이야기와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강릉에서 온 서울살이 5년 차 서나영은 강릉에 홀어머니가 계시고, 꿈은 작가이지만 일단은 서점에서 근무한다. 솔롱고는 몽골에서 온 서울살이 5년 차이고, 서울에서 돈을 많이 번 후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삶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이 두 인물의 중심 이야기 외에도, 나영이 사는 방의 주인집 할머니, 애교가 많은 희정엄마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남자 구 씨, 나영이 다니는 서점의 사장인 빵, 솔롱고의 룸메이트인 필리핀 사람 마이클까지 다채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출처: 뮤지컬빨래 공식 페이스북
출처: 뮤지컬빨래 공식 페이스북

서울의 어느 달동네로 이사를 온 나영, 2층으로 빨래를 널러 올라가는데 그때 옆 건물 옥탑방에 사는 솔롱고를 만나게 된다. 빨래를 널며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두 사람, 하지만 삶이 빨래를 너는 순간만큼 아름답고 평화롭지만은 않다. 서점에서 일하는 나영과 공장에서 일하는 솔롱고에게 닥치는 사건, 집주인 할머니의 속사정, 희정엄마와 구 씨의 티격태격하는 이야기까지 서울살이하며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애환과 그 속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는 것이 뮤지컬 '빨래'의 매력이다. 

어느덧 5000회 공연까지 30번도 남지 않은 뮤지컬 '빨래', 2005년 처음 시작한 이후 어느덧 햇수로 15년이 지났다. 뮤지컬 '빨래'는 또한 탄탄한 마니아층을 지니고 있는데 지금까지 관람한 관객의 수는 약 75만 명, 그중에는 이 뮤지컬을 수십 번 본 관객도 있고, 심지어 누군가는 100번까지도 보았다고 한다. 뮤지컬 '빨래'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뻗어 나가기도 했는데, 2012년에는 일본 진출을, 2016년에는 중국에 초청되어 한국어 대사로 공연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중국 라이선스 공연을 선보여, 본격적으로 중국 배우와 중국어 대사로 진행하였다. 

뮤지컬 '빨래'의 흥행에는 탄탄한 스토리와 감정선, 다양한 매력의 캐릭터, 마치 우리가 살던 동네를 구현한 듯한 무대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여러 이유 중에서도 뮤지컬 중에 배우들이 직접 부르는 OST가 특히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을 보고 온 관객들이 남긴 후기에서도 OST에 대한 감탄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실제로 OST 중 어떤 곡들은 이틀 전에도 커버 곡이 올라올 정도로 긴 사랑을 받고 있다. 2019년에 다시 발매된 19곡의 OST 중 대표적인 곡들을 소개하려 한다. 

서울살이 몇 핸가요

출처: 뮤지컬빨래 공식 페이스북
출처: 뮤지컬빨래 공식 페이스북

 

                                "서울 살이 몇 핸가요, 서울 살이 몇 핸가요.

어제 어디서, 왜 여기 왔는지 기억하나요?

...

서울 살이 여러 해, 당신의 꿈 까지 그대론가요?

나의 꿈 닳아서 지워진지 오래

잃어 버린 꿈 어디 어느 방에 두고 왔나요?"

 

뮤지컬의 첫 곡이자 후반부에 다시 한 번 나오는 곡 "서울살이 몇 핸가요"가 첫 번째 추천곡이다.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은 각자 서울에 온 이유도 다르고, 서울에서 있던 시간도 모두 다르다. 살다 보면 서울살이 참 힘들다싶어 좌절할 때도 있고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게 되지도 않는다. 뮤지컬의 인물들이 자신의 "서울살이" 이야기를 하며 가사를 풀어가는 모습은 많은 관객에게 공감대를 사기에 충분하다. 특히 가사 뒷부분의 "당신의 젖은 마음을 빨랫줄에 널어요, 바람이 우리를 말려줄 거에요. 당신의 아픈 마음 꾹 짜서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줄 거에요. 당신의 아픈 마음 털털 털어서 널어요. 우리가 말려줄게요."라는 가사는 뮤지컬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짧게 요약한 듯하다. 

참 예뻐요

출처: 뮤지컬빨래 공식 페이스북
출처: 뮤지컬빨래 공식 페이스북

 

"참 예뻐요 내 맘 가져간 사람

참 예뻐요 내 맘 가져간 사람

가을 밤 잠 못드는 사랑 준 사람

짧게 웃고 길게 우는 사랑 준 사람

꼭 한 번만 내게 말을 걸어 준다면

꼭 한 번만 웃는 얼굴 보여 준다면

꼭 한 번만 내민 손을 잡아준다면

밤 하늘을 날 수도 있을 텐데"

 

강원도에서 온 나영과 몽골에서 온 솔롱고, 다르다면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솔롱고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부르는 노래이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조심스러우면서도 애절한 가사는 수많은 관객의 눈에 눈물이 맺히게 한다. 기억에 오래 남는 탓인지, 유튜브에는 "참 예뻐요"의 수많은 커버 곡들이 여전히 업로드되고 있다. 몽골인 솔롱고이기에 할 수 있는, "나영, 참 예뻐요"라는 말이 아이 같으면서도 순수한 그 마음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조심스럽고 진중한 성격 탓에 노래로나마 자신의 마음을 수줍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솔롱고에 감정을 이입하다 보면 이 노래가 가슴 속 깊이 박히게 된다.

 

슬플 땐 빨래를 해

출처: 씨에이치수박
출처: 씨에이치수박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니 눈물도 마를 거야

자, 힘을 내

...

슬픔도 억울함도 같이 녹여서 빠는 거야,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밟다 보면 힘이 생기지"

 

한없는 우울함에 빠져 자신이 너무도 보잘것없다고 느끼고, 더는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영에게 이웃들이 들려준 노래다. 더러워진 옷을 빨면 새것처럼 깨끗해지고, 좋은 향기가 나며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의 감정도, 마음도 그러하다. 슬픈 일, 억울한 일, 화나는 일 모두 녹여서 빨래하면 바람에 마른다는,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마치 실제로 빨래를 하듯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이다. 특히 나영의 이웃들이 이불을 넓게 펼쳐 나영의 뒤에서 휘날리며 바람을 만들어주고, 비누로 빨래를 하듯 비눗방울을 방울방울 날리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가끔 한 번씩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며 실컷 웃어보기도 하고, 화려한 무대 효과에 눈과 귀를 호강해 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사랑 얘기에 푹 빠져 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웃기지만 않으면서도, 사랑이 주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일상 속 소소한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는 뮤지컬 '빨래'를 강력히 추천한다. 공연장 안에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푹 빠지고, 뮤지컬이 끝난 뒤에는 여러 OST가 귓속에서 한동안 맴돈다. 누구나 살아가며 힘들 때가 있다. 어디에선가 위로받고 싶은때도 있다. 그럴 때, 뮤지컬 '빨래'를 통해 위로받고, 주인공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빨래가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바람에 맡겨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공연정보: 뮤지컬/14세 이상/160분

기간: ~오픈런

시간: 수 - 16:00, 20:00
       목, 금 - 20:00
       토 - 15:00, 19:00
       일 - 16:00

장소: 동양예술극장 1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