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 본 그 순간
이영재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때서야 비로소 너도 나를 바라본다.
너도 내 눈을 바라본다.
우리의 떨림이
우주에 전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너를 가만히 들여다본
그 순간은
너와 나를 하나 되게 하는
고요였다.
어린 시절을 추억해보면, 서둘러 숙제를 끝내 놓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오늘은 꽃에 열매가 맺었을까? 감나무에 감이 열렸나? 백합꽃은 잘 있나? 딸기는 익었나? 그렇게 자연이라는 놀이터에서 실컷 놀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 습관은 오래 이어져 50대가 된 지금까지도 이어져 왔다. 산책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산책길에서는 꽃향기도 맡을 수 있지만, 나뭇잎이 바람결에 살랑거리는 소리, 새들의 지저귀는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다. 내가 꽃을 바라보면 꽃도 나를 보고, 내가 나뭇잎을 바라보면 나뭇잎도 나를 보며, 내가 새를 바라보면 새들도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하나가 된다.
내일은 또 무슨 색으로 변해 있을까? 조금 더 자라 있을까? 감나무에 꽃이 폈다가, 초록색 감이 열렸다가, 시간이 지나면 주홍색 감으로 익어간다. 겨울이 되면 서리를 맞아가고 까치밥이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년의 만남이지만, 서로 기다려주고 바라봐주면서 그들과 내가 좋은 친구로 소통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