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주말 저녁의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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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주말 저녁의 단상(斷想)
  • 지호원 작가
  • 승인 2020.01.07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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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많은 사람이 새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산으로 바다로 몰려들었다. 새롭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새 사람, 새 옷, 새 신, 새 가방, 같은 값어치를 지녔을망정 지폐도 은행에서 갓 나온 빳빳한 새 돈을 좋아한다.

2020년은 한 해의 시작이자 십 년의 또 다른 시작이다. 그러나 2019년 12월 31일과 2020년 1월 1일 사이에는 시간의 흐름만 있을 뿐이다. 1월 1일이 지나 1월 2일의 아침이 오면 해가 다시 떠오르듯, 자연의 변함은 없건만, 우리는 한 해의 시작과 끝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환경이 변화고 마음이 변하고, 그래서 어느 시점에선가는 자신의 소망과 의지를 다져보는 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그 계기의 시점이 바로 새해맞이다. 사우나에 가서 목욕하고 이발을 하고 게을렀던 지나간 해를 반성하고 새해에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나름의 다짐도 다진다.

그런 다짐이 하루가 시작되는 매일 아침마다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더 계획적이고 성취적이며 덜 후회하게 살게 될까?

아주 오래전 매일 한 장씩 뜯어내는 일력(日曆)이 집집의 벽마다 걸려 있던 시절, 가족 중 누군가는 매일 아침 벽에 걸린 일력 한 장을 찢어내며 오늘 하루는 어떻게 살까? 무엇을 해야 하고, 아이들 등록금과 조만간 다가올 조상의 제삿날을 기억하고, 전기세와 수도세 등 이러저러한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와 함께 일력은 사라지고, 벽에는 일력 대신 사계절을 담은 자연과 빼어나거나 매력적인 미로 눈길을 잡는 달력(-曆)이나 책상 위에 놓는 작은 캘린더가 대신했다. 하루하루의 각오를 다지는 대신 한 달 한 달의 스케줄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대가 됐다. 하루하루를 사는 대신 한 달 한 달을 살고, 일 년을 사는 시대가 됐다고 말하면 개인적 생각일까?

새해를 맞으면서 누군가는 20대에서 30대가 되고, 40대가 되고, 50대와 60대를 맞았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70대를, 80대, 90대를 눈앞에 두고 강물처럼 쉼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새해 첫 주말 식구들과 어머니 집을 찾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50이 넘은 동생이 결혼하지 않아 84세의 노모와 함께 살고 있어 장남이건만 그나마 마음이 가볍다. 가끔 어머니는 80이 넘은 나이에도 막내아들 뒤치다꺼리하며 산다고 푸념도 늘어놓지만, 그 푸념 안에는 그래도 혼자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나름의 위안과 부모로서 아직 제 짝을 못 만나 당신과 함께 사는 부모로서의 걱정도 담겨 있을 것이다.

함께 이른 저녁을 먹고 과일을 깎으며 이런저런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인생이란 뭘까?’ 하는 생각이 드는 2020년 첫 주말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