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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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는 꽃
  • 엄광용 작가
  • 승인 2019.12.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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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 한편

            다시 피는 꽃

                                     도종환

 

가장 아름다운 걸 버릴 줄 알아

꽃은 다시 핀다

제 몸 가장 빛나는 꽃을

저를 키워준 들판에 거름으로 돌려보낼 줄 알아

꽃은 봄이면 다시 살아난다

가장 소중한 걸 미련 없이 버릴 줄 알아

나무는 다시 푸른 잎을 낸다

하늘 아래 가장 자랑스럽던 열매도

저를 있게 한 숲이 원하면 되돌려줄 줄 알아

나무는 봄이면 다시 생명을 얻는다

변치 않고 아름답게 있는 것은 없다

영원히 가진 것을 누릴 수는 없다

나무도 풀 한 포기도 사람도

그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바다까지 갔다가 제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제 목숨 다 던져 수천의 알을 낳고

조용히 물밑으로 돌아가는 연어를 보라

물고기 한 마리도 영원히 살고자 할 때는

저를 버리고 가는 걸 보라

저를 살게 한 강물의 소리 알아듣고

물밑 가장 낮은 곳으로 말없이 돌아가는 물고기

제가 뿌리내렸던 대지의 목소리 귀담아듣고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내주는 꽃과 나무

깨끗이 버리지 않고는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사랑의 아포리즘>

버리고 다시 얻는 사랑

사랑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때의 안타까움, 그것이 다시 사랑을 만드는 기름이 된다. 물이 가득한 항아리를 비울 때, 그 텅 공간에서 사랑의 공명음이 울려온다. 배가 부른 사람은 더는 먹을 것을 찾지 않는다. 배가 고파져야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가슴에 충만한 사랑은 순간에 불과할 뿐, 그것을 깨끗이 비울 때 다시 새로운 사랑이 싹튼다.

-영원한 사랑이란 충만한 사랑이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버리고 다시 얻는, 즉 생(生)과 멸(滅)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영속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