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글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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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글에 빠져든다
  • 지호원 작가
  • 승인 2019.12.2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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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원의 글쓰기 강좌⑨

독자는 두 가지 통로를 통해 글에 빠져든다.

하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리듬이다. 내용은 시각 비중이 크고 리듬은 청각의 역할이다. 글을 읽는 것 역시 노래 감상과 같다. 우리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와 가락을 동시에 음미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가사와 가락의 비중이 다를 뿐이다. 노래는 가락 비중이 크지만, 글은 가사에 더 방점이 찍힌다. 가사는 구체적일수록 전달이 쉽다.

분명한 것은 인생의 뭐든 그냥 저절로 되는 건 없다. 나이 들어 선생님이나 아버님, 어머님 또는 어르신 소릴 듣는 건 빼고는 말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1984’라는 소설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조지 오웰은 ‘글쓰기는 욕망의 발현’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욕망이 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따르는 것이 있다. 바로 ‘글쓰기는 노동이다’라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는 방법에 관해서는 여러 책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런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문장을 짧게 쓰되 어법에 맞게 써야 한다, 글의 구성은 논리적으로 해야 한다, 솔직하고 진솔하게 써야 한다. 글쓰기 책들은 늘 이런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책들을 읽고 글쓰기 능력이 향상된 사람이 있을까?

조지 오웰
조지 오웰

 

인간에게는 기억이라는 DNA가 있다

모든 생물에게는 DNA가 있다. DNA는 물리적인 실체를 갖춘 기억의 일종이며, 개체를 포함하는 종 전체가 발생하기까지의 역사를 내장하고 있다. 이런 DNA는 인간에게는 기억에 대한 현재까지의 생각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유용한 메타포다.

글을 쓸 때, 우리는 글의 내용 전부를 창작으로만 완성할 수 없다. 문학적인 글, 예술적인 글 또한 창작의 결과물이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온전히 100%를 상상과 허구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 이야기 속에는 적게는 단 1%라도 자신이 경험한 삶의 기억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상상이라는 비료와 물을 주어 작품이라는 나무를 키워가는 것이다.

글쓰기는 글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단계를 거친다. 예를 들어 자서전의 경우, 다음과 같이

제1단계 : 기억(첫 번째 자극)

제2단계 : 반복(본격적인 글쓰기, 표현)

제3단계 : 완성(정리, 수정)

로 구분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반드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개인의 습관에 따라 글을 쓰는 방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글을 쓸 때는 각 단계에 따라 신축성 있게 대처하면 된다. 예를 들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분명 뭔가 머릿속에서 맴돌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컴퓨터를 켜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경우다.

조금 전까지 그토록 강렬하게 움직이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잊혀 머릿속이 온통 빈 것 같은 경우다. 분명한 것은 이런 상태라고 해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주제를 한 번도 다룬 적이 없으므로 낯설게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