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상태바
유토피아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4.01.05 1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유토피아의 작가 토마스 모어를 말하자면 헨리 8세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헨리 8세는 영국 왕 중에서 가장 일화가 많은 왕으로 결혼을 6번이나 한 인물이다. 헨리 8세는 두 번째 아내인 앤블린과의 결혼을 위해 로마교황청으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하자 스스로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 가톨릭인 성공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또한 앤블린과의 결혼에 반대한 대법관 토마스 모어를 참수형에 처했는데 사형 집행장에서 토마스 모어가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자신의 충복을 죽이면서 까지 결혼을 강행했던 사랑하는 두 번째 아내 앤블린도 결국 런던탑에서 도끼로 참수된다. 그녀의 이야기는 ‘천일의 앤’의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후일 그녀가 낳은 딸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을 가장 강력한 국가인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여왕이 된다. 그 후 4번째 아내 클레페 앤을 추천한 토마스 크롬웰도 처형된다.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6세는 미국작가 마크 트웨인에 의해 ‘왕자와 거지’라는 소설로 쓰여 졌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헨리 8세는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등장한다. 로마교황청은 토마스 모어 사후 400년이 지난 1935년 토마스 모어에게 성인의 칭호를 부여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단테의 「신곡」,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과 함께 르네상스 문학의 대표로 인정받는다.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로 ‘없다’라는 의미의 ‘ou’와 ‘장소’를 뜻하는 ‘topos’를 합성한 것으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유토피아와 비슷한 책으로는 플라톤의 「공화국」이 있다. 「공화국」에서 플라톤은 "행복한 국가는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공부할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로마황제이며 철학자였던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생각난다.

유토피아는 가상인물인 '라파엘(가상인물)'과 실존인물인 저자 토마스 모어와 피터 자일즈(앤트워프시의 서기관), 제롬 버스라이덴(찰스 5세의 고문관)과의 편지 및 대화를 통한 공상 소설이자 사회비판서다. 작품 속 유토피아 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자.

“유토피아는 직경 약 320km의 초승달 모양의 섬으로 원래는 반도였는데 운하를 파서 섬이 되었다(영국을 빗대서 표현했다고 함). 하루 6시간-오전 3시간, 점심휴식 2시간, 오후 3시간- 일한다. 그 외 시간은 자유 시간이다. 수출품의 1/7은, 수입하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한다. 그들은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친절하고 편안히 쉬는 것을 좋아하고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일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머리를 쓰는 일에는 게으름이 없다. 닥쳐오지도 않을 재난에 대비한다고 자기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는다.

모든 사회악의 근원은 돈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쾌락은 건강이라고 생각한다. 진짜와 모조를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진짜만을 고집하는 사람들, 금붙이를 땅속에 박아두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들은 미덕을 갖춘 쾌락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며, 나의 쾌락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도 쾌락을 누릴 수 있도록 적극 돕는다. 유토피아 인들은 보석의 반짝이는 빛보다 밤하늘의 별들의 반짝임을 더 좋아한다. 그들은 그리스의 철학서적을 좋아한다. 또한 의학을 존중한다. 공인된 안락사는 명예로운 죽음으로 존중된다.

혼인은 남자는 22세, 여자는 18세이며 혼전성교는 허락되지 않는다. 일부일처제이다. 결혼 전에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알몸을 보여주어 검증을 받는다. 유토피아에는 법률이 없다. 가장 자연스런 판단이 가장 옳은 판단이다. 그들은 조약을 맺지 않는다. 조약은 서로를 자연스럽게 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가장 비인간적인 행동양태라고 말한다. 국방은 용병을 사용한다. 다양한 종교가 있다. 언제나 가장 비열한 사람이 가장 완고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즐겁게 맞고 장례는 유쾌하게 치른다. 그들은 과학에 관심이 없다. 선행을 베푸는 일이 인생의 행복이라고 믿기 때문에 과학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노후보장이 되는 나라이다.

모든 사회악의 근원은 돈이라고 생각한다. 부자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돈을 지키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한다. 이 세상에 돈이 사라지는 즉시 공포와 갈등과 불안과 과로가 사라진다. 가난이라는 문제도 사라진다. 흉년으로 모든 백성이 굶어 죽어갈 때도 부잣집의 곡간에는 쌀이 넘친다. 저 빌어먹을 돈만 없었다면 누구나 쉽게 충분한 음식을 얻을 수 있고 양식을 쉽게 분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양식을 더욱 얻기 힘들게 만드는 방해물은 돈밖에 없다. 인간의 오만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부유함'이란 필요한 것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구구절절, 조목조목 옳고도 지당한 말씀들이다. 그 옛날 500년 전 사람들이 생각하던 좋은 세상이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이상향’이라는 말답게 읽을수록 감동의 물결이 유토피아처럼 밀려온다.

유토피아/토마스 모어/권혁 역/돋을새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