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때 공주와 왕자가 되어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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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때 공주와 왕자가 되어본 경험
  • 예현숙 박사
  • 승인 2023.11.21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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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현숙 심리치료사, 박사

 

 

아기 때 엄마와 옹알이로 말하고, 따듯한 품을 많이 경험한 아기는 자기가 왕자, 혹은 공주인 줄 안다. 그렇게 자란 아기는 응집된 ‘자기’(self)가 생기고, 조금 더 자라면 튼튼한 ‘자아’(ego)가 형성된다. 내가 만났던 한 젊은 아빠에 관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는 스마트한 사람이라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비교적 긍정적인 마음의 소유자이건만 고민이 있다. 평소 자기 이야기를 남에게 편하게 할 수 없는 게 불편하다. 자녀를 대할 때는 의무적으로 대하는 마음이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말하자면 자녀를 돌보는 것이 즐겁다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자녀 돌봄이 즐겁다기보다 거의 의무적이라면?

아빠는 직장에서 집에 돌아와도 쉬질 못한다. 빨리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잠재우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길 희망한다. 예전의 남편들은 밖에서 일하고 집에 오면 집안일은 면제받았었다. 요즘은 저녁 시간이 되면, 아이들 키우는 건 온전히 부부의 몫이다. 아이들을 아내 혼자서 감당하기엔 무리이다. 그래서 함께 돌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퇴근 후에도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게 어려워진다. 이런 외적인 이유 말고도 아이를 키우는 게 즐겁다기보다 거의 의무적으로 대하게 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건 어려서 엄마로부터 세심한 돌봄을 못 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 어렸을 때 엄마와 보낸 시간이 즐겁고 신났다면 현재 자신의 아이에게 전력투구할 힘이 있게 된다. 자기가 경험한 대로 하게 되어 있다. 물론 엄마와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한 사람도 자녀를 키울 때 애정을 부어서 잘 키울 수 있다. 자기가 엄마와의 애착이 부족했기 때문에 더 정성을 기울이게 되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서 크게 지칠 수 있다.

 

 엄마의 사랑과 지지를 먹고 자라는 아이들

아이는 밖에서 일어난 일을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쁘고 좋은 감정, 화나고 억울하고 쑥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것이다. 이를 받아주는 엄마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자란다면, 때론 좌절도 있겠지만 대체로 모든 것이 즐겁고 신난다. 이런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된다면? 대체로 삶의 에너지가 활기 넘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감정을 조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은 화를 낼 때도 갑자기 분노로 변하지 않는다.

자녀를 키우는 데도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부부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유독 배우자에게 잘 삐치고, 자녀를 키우는 데 힘이 들어서 너무 지치거나 피하고 싶다면,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

위에 소개한 아빠는 그런대로 친구들과 잘 지내기는 하지만, 속내를 잘 드러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에 부끄러운 기억들이 자신을 옭아매기 때문이다. 엄마와 관계가 친밀했다면 이런 기억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성격상 세밀하지 않았고, 일하시느라 바빠서 아이의 필요를 잘 챙기지 못했다. 그런 영향을 고스란히 어린 자녀가 받았다. 엄마에게 하소연하려고 몇 번 다가갔지만 엄마는 너무 바쁘셨고, 엄마의 따듯함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아이는 엄마에게 자기 마음을 보일 수 없었고, 불편한 감정을 속에 담아둔 채 지냈다.

 

 어릴 적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끼친다

아이에게 곤란한 일이란 어른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이에게는 무척 부끄러운 일들이 될 수 있다. 아이에겐 부끄러운 일들이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게 된다. 수치스러운 기억을 간직한 아이가 여전히 성인인 내 안에서 작동하게 된다. 어린아이 때의 기억이 현재의 성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실이다. 엄마에게 충분한 애정과 지지를 받지 못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결핍을 배우자에게서 채우려는 기대심리가 생긴다.

그런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삐치게 되고, 마음이 무너진다. 이 젊은 아빠는 왠지 자신 안에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지냈다. 상담 이후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족했던 부분을 인지하고, 이를 자녀들에게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빠가 되었다. 자녀들과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긴 것이다. 현명한 아내의 협조와 이해가 뒤따랐고, 이 젊은 아빠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왔다. 어려서 부족한 부분을 깨우친 후 현재의 배우자와 함께 해결해 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