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의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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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의존
  • 예현숙 박사
  • 승인 2023.09.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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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현숙 심리치료사, 박사

 

 

‘비 온 뒤 햇빛 들고 땅이 굳는다’라는 일상적인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부부관계에도 적용되는 거 같다. 부부가 이런저런 일로 싸우고 나서 그걸 해결하지 못하고 지내게 될 때가 있다. 그때의 기분은 여름 장마철의 집안 공기 같다. 습기가 가득하고, 빨래가 마르지 않는 집안에서 기분은 상쾌할 리 없고, 우울하기까지 하다. 그러다가 화해를 하고 나면 햇볕이 내리쬐는 9월 한낮처럼 마음이 환해진다. 부부는 싸우기 전과 그대로 인 거 같지만 이전의 그들은 이미 아니다. 땅이 굳어지는 과정에 있다고 하겠다.

 

 

 부부 사이에 잘난 사람은 없다

부부는 서로 보완적으로 돕고 의존하며 살게 되어 있다. 서로 믿고, 적절히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신건강, 신체 건강에 좋다. 부부가 잘 지내다가 어떤 일로 싸움을 하고 나서 그걸 해결하지 않고 여러 날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면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게 된다. 보완적이고 의존적인 관계가 깨진다. 서로 잘났다고 으르렁거리며 힘겨루기를 한다. 이쯤 되면 다 큰 자녀들은 부모의 어느 한쪽 편을 들게 되어 있다. 엄마가 성격이 똑 부러지면 딸들은 엄마 편을 든다. “엄마! 아빠, 왜 저래?” “아빠하고 소통이 안 돼. 벽과 이야기하는 거 같아.” “그만두어.” 딸들의 지원을 받은 엄마는 역시 내가 옳고, 남편이 잘못했다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어느 한쪽이 잘났고, 다른 한쪽이 못난 게 아니다. 청소며 일 처리며 모든 일에 똑 부러지는 아내는 그러지 못한 남편을 비난하게 된다. 기대했던 능력 있는 남편이 아니란 걸 확인한 후 실망감을 경험할 수도 있다. 남편에 대해서 은근히 무시하는 생각이 저변에 깔린다. 아내에게 번번이 같은 일로 지적당하는 남편은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고 어떤 일에서 아내가 실제로 척척 일을 잘 해결하게 되면 열등의식이 생겨서 아내의 말에 어깃장을 놓게 된다.

 

 부부만의 시간을 못 갖는 사람들

만약 반대로 남편이 일을 척척 처리하는 능력 있는 남편이라면, 아내는 어떻게 될까? 왠지 남편 앞에서 주눅이 들고, 자기 생각을 편하게 펴지 못하게 된다. 부부는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의존해서 함께 돕고 사는 관계이다. 배우자의 단점을 이야기할 때라도 악의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면 배우자는 그 말에 쿨하게 받아넘겨서 웃을 수 있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이다. 그러기 위해서 전제되는 일이 있다. 평소에 사랑과 신뢰의 언어를 많이 나누는 등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부부들이 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갈등이 있어서 상담실에 오는 부부들은 한결같이 둘만의 시간을 갖지 못함을 하소연한다. 어린 자녀 두 명을 키우는 부모도, 다 큰 자녀 세 명이 있는 부모도 시간이 도통 안 난다고 말한다. 휴가 때도 자녀들과 함께 지내느라 부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부부가 그들 둘만의 시간을 갖지 않는 것은 관계가 위험해지는 길로 빠질 수 있다.

 

 의지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부부만의 시간을 가져라

부부가 마음을 표현할 시간을 갖지 못하면 부부관계가 무시되어 약화되기 쉽다. 이 시점에 부부들이 깨어지고, 포기하고 도망쳐 버리고 싶은 심정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배우자로도 실패하고 부모로서도 썩 잘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죽어가는 어른들은 훌륭한 가족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는 ‘가족치료’와 ‘가족 상담’의 창시자인 미국의 사티어 여사가 일찍이 말했다.

이런 면에서 시간이 부족해서 둘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부부에게 의지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나는 제안한다. 남편이 외도 후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부부가 있었다. 둘 다 회복 의지는 있는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부부였다. 점검해보니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아주 잘 대해주길 바라고(연인을 대하듯이), 남편은 이전의 화목했던 방식으로 아내를 대충 대했다. 이런 남편에게 아내를 위한 시간을 적극적으로 내어보도록 주문하였다.

좋은 장소를 물색하여 산책하고,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숙박업소에서 묵으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도록 제안했다. 둘은 나의 제안을 좋게 받아들였다. 건강한 의존관계를 위해서 부부가 함께 소통하는 시간, 추억을 만드는 시간, 마음을 나누는 시간은 아주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