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장이와 아버지의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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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수장이와 아버지의 석상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3.08.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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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우리 전래 동화

 

옛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는 태어나서 아버지의 얼굴 한 번 못 보고 자라났습니다.

그 아들이 서당에 다닐 나이가 되었을 때, 그가 개구쟁이처럼 노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후레자식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아들은 마을 어른들로부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슬퍼서 혼자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저에게는 아버지가 안 계세요?”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로하며 아버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습니다.

“네 아버지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단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불우한 이웃을 도울 줄 알았고, 배고픈 거지와도 같이 음식을 나누어먹었단다. 그런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둔 네가 개구쟁이 짓만 저질러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후레자식’이란 소릴 들어서 되겠니?”

아들은 마음속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았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배고픈 거지와 음식을 나누어먹었다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아들은 그런 사람들만 찾아다니며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얼굴 생김새에 따라 그 성격도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낯선 사람들의 얼굴만 보고도 어느 정도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아들은 어느 노인 밑에 가서 돌 다루는 일을 배웠고, 그 노인이 죽고 나서는 유명한 석수장이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돌에 사람의 얼굴을 새기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석수장이는 어머니가 몹쓸 병이 들어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돌아온 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석수장이는 어머니를 아버지 묘소 곁에 장사지낸 후 고향에서 돌 다루는 일로 밥을 벌어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는 대체 아버지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기만 하였습니다. 이젠 어머니까지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 올라간 석수장이는 큰 돌을 하나 발견하였는데, 이상하게도 그 돌을 보자 생전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바위는 다듬어지지 않는 자연 그대로인데, 그의 눈에는 바위 안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 듯이 보였던 것입니다.

석수장이는 돌은 지게에 짊어지고 집으로 내려와 마당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정과 망치를 들고 돌을 다듬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그 돌은 석수장이의 상상 속에서만 그려지던 아버지의 얼굴로 점점 변해갔습니다. 그는 정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열심히 돌을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나자 드디어 아버지의 석상이 완성되었습니다.

다 완성해 놓고 보니 아버지의 석상은 대단한 걸작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재료가 돌이라는 것 이외에는 거의 실물과 다름없을 정도로 사람 얼굴에 가까웠습니다. 석수장이는 평소 어머니에게서 들은 대로 석상에 아버지의 인자한 눈과 우뚝한 콧날, 버들 같은 눈썹, 두툼한 입술까지 제대로 새겨 넣었던 것입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석수장이는 마당가에 세워놓았던 아버지의 석상을 안방으로 모셔 들였습니다.

“아버님, 비를 맞으시면 감기 드십니다. 여기는 따뜻한 아랫목이니 편히 쉬십시오.”

석수장이는 안방 아궁이에 군불까지 지폈습니다.

그리고 석수장이는 매일 일을 나갈 때 반드시 아버지의 석상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일하러 갔다 오겠습니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안방 문을 열고 아버지의 석상에게 허리를 굽혔습니다.

“아버님, 하루 종일 심심하셨지요? 얼른 따뜻한 진지를 지어 올리겠습니다.”

석수장이는 이렇게 아버지의 석상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문이 곧 마을에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석상을 모신다고 해서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생전 얼굴 한 번 못 본 아버지를 그처럼 극진히 위하는 걸 보면 효자가 틀림없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석수장이의 친구가 찾아와 안방에 모셔놓은 아버지의 석상을 보고 말하였습니다.

“이 녀석! 정말 너 소문처럼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저런 돌을 아버지로 모시다니?”

석수장이는 친구의 말에 벌컥 화를 내었습니다.

“말조심해! 우리 아버님을 욕되게 하면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러자 친구는 마침 곁에 놓여있던 망치를 들어 아버지의 석상 머리를 한 대 내리쳤습니다.

“이까짓 돌덩어리 때문에 내 친구가 미쳤다는 소릴 들어선 안 되지.”

그런데 아버지의 석상 머리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석수장이는 얼른 망치를 빼앗아 친구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친구를 죽인 죄로 관가에 끌려간 석수장이는 곧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비록 사람을 죽였으나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는 상소문을 올려 그는 감옥살이 5년 만에 풀려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의 석상을 모시고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 세상의 아버지들은 어쩌면 석상처럼 무뚝뚝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온기가 있고 피를 흘릴 줄 아는 석상이 바로 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