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과거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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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거 시험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3.04.1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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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우리 전래 동화

 

충청도 시골에 사는 한 노인이 감나무를 심었는데, 몇 년 후 대접만한 감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이렇게 탐스러운 감을 내가 먼저 먹을 수는 없지. 임금님께 진상을 해야겠습니다.”

노인은 감을 한 보따리 싸서 지게에 짊어지고 한양으로 향했습니다.

한양에 당도한 노인이 대궐을 찾아가 임금님 뵙기를 청하자, 수문장이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습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임금님을 뵙고자 하는 것이오?”

노인은 첫날부터 실망이 컸습니다. 그러나 큰마음을 먹고 상경한 몸이라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노인은 며칠 동안 그렇게 대궐 문 앞에 가서 임금님 뵙기를 청하였습니다.

“임금님을 직접 뵙기 힘들다면 이 감이라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감이 아니라 그보다 중한 금을 가져와도 영감 같은 사람은 이 대궐에 들어갈 수는 없소.”

노인이 애걸을 하였지만, 수문장의 태도는 그전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제 노인은 가지고 온 노자까지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밤이 되었지만 객주에 들어갈 수가 없어 대궐과 가까운 광화문 다리 밑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감 보따리를 내려놓고 거적을 깐 다음 그 위에서 한뎃잠이라도 자려는 것입니다.

막 잠이 들려는 참인데, 두 사람이 와서 노인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대체 댁은 뉘신데 이런 데서 잠을 청한단 말이오?”

노인의 어깨를 흔들던 사람이 투박하게 물었습니다.

“예, 저는 이 감을 임금님께 진상하려고 충청도에서 올라온 사람인데, 며칠째 대궐문을 열어주지 않아 노자가 떨어지는 바람에 이렇게 한뎃잠을 자게 됐습니다.”

노인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뒤에 섰던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습니다.

“그 충성심이 참으로 대단하시오. 날이 새면 다시 대궐에 가서 청해보시오.”

그 말씨나 태도가 대궐을 지키던 수문장 같지 않고 아주 점잖았습니다.

“글쎄요. 내일은 꼭 들어갈 수 있을까요?”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지 아닙니까? 내일은 아마 수문장이 대궐 문을 열어줄 것이오. 그리고 보아하니 시골에서 글을 읽던 선비 같은데, 이왕 대궐에 들어가는 김에 내일 열리는 과거 시험에 응시해보시는 것은 어떻겠소?”

점잖은 양반의 말에 노인은 손사래를 쳤습니다.

“글을 읽다니요? 저는 그저 낫 놓고 기역 자 하나 모르는 시골 늙은이외다.”

“그런 건 염려 마시오. 이번 과거 시험은 아주 쉽다고 합디다.”

“대체 어떤 시제를 내는데요?”

노인은 마른 침을 삼키며 점잖은 양반에게 한 발 다가섰습니다.

“내일 노인장께서 과거 시험장에 당도하면 까마득한 장대 위에 종이가 매달려 있을 것이오. 거기에 글자가 쓰여 있는데, 그것이 대체 무슨 글자인지 알아맞히면 됩니다.”

“까마득한 장대 위에 있는 글자를 무슨 수로 안단 말이오?”

실망한 눈빛으로 노인이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점잖은 양반이 빙긋이 웃으며 노인에게 바짝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내가 대궐에서 과거 시험 관장하는 사람을 잘 아는데, 솔개 연(鳶) 자를 낸다고 합디다.”

그날 밤 두 사람이 돌아가고 난 후, 노인은 잠도 한 숨 자지 않고 “솔개 연! 솔개 연!”만 입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노인은 대궐로 가서 다시 임금님 뵙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수문장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궐 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노인은 직접 임금님을 뵐 수는 없었지만, 진상품 올리는 곳에 가서 감 보따리는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젯밤에 만났던 점잖은 양반의 말처럼 대궐에서는 과거 시험이 열린다고 하였습니다. 노인이 시험장으로 달려가 보니 과연 까마득한 장대 끝에 흰 종이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저 장대 끝에 매달린 흰 종이에 무슨 글씨가 씌어있는 지 아시오?”

시험관이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그, 글쎄요. 가만 있자…….”

노인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밤새 외웠던 ‘솔개 연’ 자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서 무슨 자인지 대보시오!”

시험관이 재촉하였습니다.

“그것이 저, 저, 공중에서 빙빙 돌 연 자 아닌가요?”

노인은 그때 솔개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그 새가 날아가는 모양이 떠올라 얼떨결에 그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 답이 틀렸습니다.”

시험관은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였습니다.

결국 노인은 과거 시험에 떨어져 잔뜩 실망만 안고 대궐 문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대궐 문을 나서자 그때서야 노인의 머리에 ‘솔개 연’ 자가 떠올랐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 없던 노인은 주막에 들러 막걸리를 마시며 마침 옆에 있던 경상도 노인에게 신세한탄을 늘어놓았습니다. 어젯밤과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경상도 노인이 눈을 빛내며 물었습니다.

“어제 노인장께서 광화문 다리 밑에서 만났다는 점잖은 양반은 임금님이 틀림없습니다. 그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 우리 다시 한 번 가서 과거 시험에 응시하겠다고 하십시다. 내가 노인장을 과거 시험에 합격하게 만들어 줄 테니 두고 보십시오.”

경상도 노인의 말에 용기를 얻은 노인은 다시 대궐로 갔습니다.

감을 진상한 노인이 다시 찾아왔다는 보고를 들은 임금님은 특별히 어명을 내려 과거 시험 기회를 한 번 더 주도록 하였습니다.

시험관이 두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저 장대에 매달려 있는 흰 종이에 무슨 글씨가 씌어져 있습니까?”

그러자 경상도 노인이 먼저 충청도 노인을 제치고 앞으로 나서며 시험관에게 물었습니다.

“한양에서 쓰는 말로 답할까요, 시골에서 쓰는 말로 답할까요?”

“여보시오! 한양 말 따로 있고 시골말 따로 있단 말씀이오?”

시험관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습니다.

“같은 글자라 해도 시골에서는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그렇다면 두 가지 다 말해보시오.”

시험관의 재촉에 경상도 노인이 대답하였습니다.

“한양 말로 솔개 연 자고, 시골말로는 공중에서 빙빙 돌 연 자입니다.”

시험관은 곧 임금님께 가서 그 사실을 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두 노인의 말이 모두 정답이로군! 두 노인에게 각각 마땅한 벼슬자리를 내려주시오.”

임금님은 그러면서 껄껄껄 웃었습니다.

 

☞ 먼저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상대가 자신을 존경하게 됩니다. 상대를 하찮게 보고 깎아내리게 되면 그 자신도 같이 하찮아집니다. 그래서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은 바로 그 스스로를 높여주는 마음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