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깨달은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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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깨달은 머슴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3.03.1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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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듯해지는 우리 전래 동화

 

옛날 어느 부잣집에 머슴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집에는 부자 영감의 아들이 있었는데, 머슴과 나이가 동갑이었습니다.

머슴은 새벽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을 해야 부자 영감에게 야단을 맞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자 영감의 아들은 매일 같이 방안에 들어앉아 글공부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늘 천, 따 지…….”

방안에서 부자 영감 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머슴은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참, 세상 공평하지 못하구나. 누구는 방안에 들어앉아 글만 읽어도 비단옷에 쌀밥이 나오는데, 누구는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하고도 겨우 무명옷에 보리밥이라니…….’

머슴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봄이 되자 머슴은 또다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논과 밭으로 일을 하러 다녀야만 하였습니다. 소를 몰아 논밭을 갈아야 했고, 지게로 부지런히 두엄을 져 나르고, 씨앗을 뿌리고, 모를 심고, 김을 매고, 논두렁을 깎고…… 이렇게 농사를 짓는 일이란 해도 해도 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부자 영감의 아들은 방안에 들어앉아 글만 읽었습니다. 더구나 독선생까지 앉혀놓고 시키는 대로만 읽으면 되었습니다.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아 허리를 좌우로 흔들며, 그저 “하늘 천, 따 지”만 소리 내어 읊으면 만사형통이었습니다.

머슴이 보기에 공부라는 것은 그저 놀고먹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매일이면 매일,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을 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해 가을 추수가 다 끝났을 때 머슴은 용기를 내어 부자 영감에게 말했습니다.

“영감님, 저도 글공부를 좀 해야겠습니다.”

“뭐라고? 네가 글을 배워?”

부자 영감은 너무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하였습니다.

“네, 저도 도련님처럼 글을 배우고 싶습니다요.”

머슴은 자신 있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과연 글을 배울 수 있겠느냐?”

부자 영감이 다시 물었습니다.

“네, 자신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머슴은 큰 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글이란 어려운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있겠느냐?”

“네, 논밭에 나가 뼈 빠지게 일을 하는 것 보다야 수월하겠지요.”

머슴의 말에 부자 영감은 껄껄대고 웃었습니다.

“진정 네가 글공부를 원한다면 내일부터 우리 아들하고 같이 글공부를 익히도록 하여라.”

부자 영감의 허락이 떨어지자 머슴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다음 날부터 머슴은 부자 영감의 아들과 함께 독선생 앞에서 글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글공부는 우선 자세부터 반듯해야 한다.”

독선생은 머슴에게 부자 영감의 아들처럼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허리를 곧게 편 채 글을 읽도록 하였습니다.

“하늘 천, 따 지…….”

머슴은 부자 영감의 아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천자문을 익혔습니다.

처음에 글공부를 시작할 때 머슴은 매우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런 생활이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글공부를 시작한 지 한 시간만 지나도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뒤틀리며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더구나 독선생은 보기보다 엄하였습니다. 머슴이나 부자 영감의 아들이나 사정을 두지 않고 천자문을 외지 못할 때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습니다.

독선생으로부터 회초리를 맞을 때는 눈물이 찔끔찔끔 날 정도였습니다. 머슴은 그때마다 엄살을 부리고 손으로 회초리를 막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된통 혼이 나서 더 많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부자 영감의 아들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비단옷 바짓가랑이를 올리자 그동안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아 시퍼렇게 멍든 자국이 보였습니다.

‘아아, 글공부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구나.’

머슴은 글공부를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다시 봄이 되자, 머슴은 부자 영감에게 말했습니다.

“영감님, 저는 글공부보다 논밭에 나가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부자 영감이 껄껄대며 웃었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그래서 공부를 할 사람, 일을 할 사람이 따로 있느니라.”

머슴은 소를 몰고 논밭으로 나갔습니다.

“이랴, 이랴! 이놈의 소야, 너도 내 말을 안 들으면 당장에 책상다리로 앉혀 글공부를 시켜버리겠습니다. 킬킬킬!”

신바람이 난 머슴은 이렇게 소에게 호통을 치며 논밭을 갈았습니다.

머슴에게는 논밭을 가는 것보다 더 수월한 일이 없었습니다. 하늘은 맑고, 바람결은 부드럽고, 종달새의 소리가 듣기 좋았습니다.

그때서야 머슴은 비로소 행복이 뭔지 알 것 같았습니다. 행복은 억지로 욕심을 부려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 행복이란 세상 사람이 다 같은 조건으로 공평해질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불행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