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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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3.02.0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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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단테의 「신곡(神曲)」은 누구나 다 아는 고전이다. 그러나 유명한 고전일수록 정작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고전의 아이러니다. 「신곡」의 원제는 ‘희극(commedia)’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곡의 이미지하고는 조금 의외의 단어다. 중세시대의 ‘희극’이라는 개념은 지금의 뜻하고는 다르게 결말이 비극이 아닌 이야기를 통칭한다고 한다. 「신곡」은 사후세계에 대한 단테의 여행기이다. 1300년 4월 8일부터 일주일간의 이야기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편은 33 가(歌)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이 죽으면 저승에 가는데 이승에서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지옥에 가고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천국에 간다. 연옥(煉獄)이란 곳은 그 중간쯤 되는 곳으로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사람들이 자기 일을 반성하고 회개하는 곳이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그러한 저승 세계에 대해 단테는 직접 경험이라도 한 듯 글로써 표현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개중엔 못된 사람도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이라고 우리는 은연중 생각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선악을 기준으로 그들은 지옥에 갔을까? 천당이나 지옥이란 곳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은 살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떠오르게 된다.

1300년대 이탈리아의 시인인 단테는 철학자, 공직자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때로는 교황과 때로는 정치인들과 의견을 달리하며 망명 생활을 하기도 한다. 세상에 시달려서 그랬을까? 그는 죽은 사람들의 사후세계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사후세계를 가보겠다는 단테의 아이디어는 우리를 흥미롭게 한다. 사후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모두에게 관심을 유발하는 강력한 콘텐츠다. 누구나 확인해보고 싶은 사후세계에 대해 700년 전의 시인 단테는 당시의 인간 군상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며 저승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단테는 저승 세계를 여행하면서 3명의 가이드로부터 안내를 받는다,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베르나르도가 그들이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건국에 관한 책 「아이네이스」를 쓴 작가이고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평생 짝사랑한 여인이다. 베르나르도는 12세기의 성인(聖人)이다. 단테는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수백 명의 신화 속 혹은 역사 속의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죄와 벌, 그리고 구원에 대한 철학적 대화를 통해 당시의 세계관을 말한다.

지금부터 단테의 「신곡」을 따라 저승 세계로 구경을 떠나보자. 조금 놀라운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인이나 현자들도 지옥에서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단테의 기준은 1300년대 당시의 기독교 사상을 중심에 둔 기준이므로 지금의 생각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 읽는 내내 단테의 그러한 기준은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처음 방문하는 곳은 지옥이다. 지옥은 지구의 땅속으로 총 9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옥에서 단테가 만나는 사람은 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 헥토르, 시저, 소크라테스, 플라톤, 히포크라테스 등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이들 철학자와 위인들이 지옥에 있다는 것이 조금 놀랍다. 단테가 이들을 지옥 편에 배치해놓은 이유는 이들은 선량은 하나 세례를 받지 않은 자들이어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예수님 태어나기 대략 500여 년 이전의 사람들이다. 2옥에서는 헬레네, 클레오파트라, 파울로와 프란체스카, 아킬레우스 등을 만난다. 이들은 모두 이런저런 스캔들의 주인공들이다. 지금은 대체로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들로 묘사되는 그들이 단테의 중세시대에는 용서되지 않는 애욕의 주인공들이었던 모양이다. 7옥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을 만난다. 역사상 정복자들이 천국에 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8옥에서는 오디세우스, 마호메트를 만난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의 권모술수 때문에, 마호메트는 이슬람교의 창시로 인해 신앙의 분열자로 묘사된다. 마지막 9옥에서는 카인, 유다, 부르투스를 만난다. 단테는 배신의 죄를 가장 나쁜 죄로 여겼던 모양이다.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 예수를 배신한 유다, 시저를 배신한 브루투스가 9옥에 떨어져 있다.

다음은 연옥이다. 연옥(煉獄)은 글자 그대로 죄를 씻고 단련하며 반성하는 감옥이다. 연옥에서는 이마에 죄를 뜻하는 P자를 7개 써 붙이고 다니며 단계마다 하나씩 지워져 죄를 사하게 된다. P는 죄를 뜻하는 라틴어 peccatum의 첫 글자이다. 연옥에는 강이 흐른다. 이쪽에서는 레테(Lethe)의 강이라고 하고 반대편에서는 에우노에(Eunoe)의 강이라고 부른다. 레테의 강물을 마시면 속세에서의 모든 것을 잊게 되고 에우노에의 강물을 마시면 속세에서의 선행만 다시 기억하게 된다. 레테의 강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강이다.

마지막으로 천국은 단테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는다. 천국은 지구를 싸고도는 아홉 개의 하늘로 구분된다. 월광천, 수성천, 금성천, 태양천, 화성천, 목성천, 토성천, 항성천, 원동천이다. 태양계를 이루는 별들의 집합이다. 그중 태양천에는 솔로몬왕, 성 프란체스코, 성 도미니크,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있다. 항성천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원동천에는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가 계신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천국과 지옥, 선과 악을 말하지만 결국은 기독교 신앙을 설파한다. 서양의 고전들을 읽어보면 대부분 그리스도 찬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파스칼의 「팡세」 등이 대표적이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나 예수 이전의 사람인 호메로스나 소크라테스가 지옥에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세상의 모든 작품은 결국 그 시대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테의 신곡도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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