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북촌마을 여성의 권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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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북촌마을 여성의 권리 찾기
  • 남성일기자
  • 승인 2019.09.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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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문화센터를 찾아서

 

요즘 안국역에 있는 종로구 계동에 가 보면,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돌아다닌다. 종로에 있는 북촌마을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흔한 일상복으로 다니지 않고 현지 전통문화를 직접 자신의 촉감으로 느끼기 위해 한복을 입고 다니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재미있고 신나는 듯하다. 얼굴에 생생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손에 손을 잡은 외국인들이 가는 곳은 종로 계동 135번지에 있는 북촌 한옥 마을이다. 북촌 한옥 마을은 세계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종로의 대표적 명소이자 대한민국의 관광지이다.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150m 정도 걸어가면 왼쪽으로 북촌마을이 나온다. 검은 아스팔트 거리 옆에는 여러 전통 찻집과 젊은 연인들이 많이 가는 유명한 빵집도 있다. 가는 길에 어느 가게 앞에 노인의 모습을 한 마네킹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너무 사람 같아 앞으로 가서 자세히 보니 마네킹이 아니었다. 그분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여기 좋은 카페니 홍보물 한 번 보시고 놀러 오세요~”

마네킹처럼 앉아 있는 중년의 신사분을 지나니 곧바로 북촌의 모든 곳을 알려주는 북촌문화센터에 도착했다. 종로 북촌마을 명소를 잘 돌아보기 위해서는 이곳, 북촌문화센터를 꼭 둘러보아야 한다. 특히 외국인과 함께 다니면서 북촌마을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전체의 지형도, 역사, 마을의 역사 인물 등이 모두 전시된 이곳을 찾아야 한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여러 정보가 눈에 보기 쉽고, 알기 쉽게 전시되어 있다.

북촌문화센터 앞에는 여러 사람이 사인펜을 들고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기에 저렇게 모여 있을까 궁금해서 가 보았더니 ‘여권통문’이라는 특별행사를 하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나에게 빨강 펜을 주면서 “색칠하세요” 한다. 나는 무엇을 할지 몰라 손사래를 치며 “네, 나중에 할게요~”하며 빠져나왔다.

안내판에 있는 여권통문을 읽어 보고 비로소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았다. 여권통문은 역사 속 여성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기 위한 프로젝트 전시작품이었다. 1898년 9월 북촌에 사는 이름 모를 여성들이 여권통문이라는 글을 써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 여성이 다닐 수 있는 여학교를 세워달라고 호소하였다. 대한민국 최초로 북촌에 사는 여성들이, 여성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누군가에 종속되지 않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권리를 외쳤다. 121년 전 이 글은 너무 놀랍고 신기해서 당시 신문들은 신문에 ‘여권통문’ 전문을 실었고, 그 후 지속해서 여성 관련 기사를 다루게 된 계기가 만들어졌다. 신문에 이러한 여권통문의 글을 시작으로 여성 관련 기사들이 지속해서 게재되자 북촌에 사는 여성들은 고종에게 관립 여학교를 세워달라는 시위를 벌였고 결국 고종의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관립 여학교 설립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찬양회’ 부인들이 중심이 되어 1899년 2월 ‘순성여학교’를 세우게 되었다니 다행이었다.

북촌문화센터
북촌문화센터

 

돌아오면서 이분들이야말로 지금의 북촌마을을 이어오게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어려워서 그런지 몰라도 몇몇 한국여성들만 있었고, 외국인들은 관심이 없는 듯했다. 북촌마을의 알려지지 않은 전통을 이렇게 북촌문화센터에서 알려주니 아주 고마웠다. 한옥가옥을 보러 오는 것도 좋지만, 한국여성분들이 일제강점기하에서 교육을 위해 자신의 권리 찾기를 해온 역사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려웠고 힘든 시절에 자신의 권리를 찾는다는 것은 스스로 현대적 자각과 계몽을 이룬 사건이었고 이는 한국인의 저력과 개척정신을 보여주는 대단히 자랑스러운 역사였다. 서울 종로 북촌마을에서 이러한 역사가 이루어진 것은 대한민국‘국가’의 자랑이자 서울 종로구 ‘지역’의 자랑이다. 앞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이 이러한 북촌 여성권리 찾기, 여권통문 행사에 참여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