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춘(暮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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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춘(暮春)
  • 曠坡 先生
  • 승인 2021.06.1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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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가 좋다

                모춘(暮春)

 

단단소리산하가(短短疏籬山下家)/나지막하고 성긴 울타리의 산 아랫집에

송첨지일조성다(松簷遲日鳥聲多)/소나무 처마에 해지니 새소리 요란하다

무단작야전계우(無端昨夜前溪雨)/간밤 집 앞개울 내리는 비 끊이지 않아

낙진한정일수화(落盡閒庭一樹花)/한가한 뜰의 나무 한 그루 꽃이 다 졌네

 

 

*속절없이 가는 봄

조선 정조 때의 시인 청계(淸溪) 신흥섬(申興暹)의 시입니다.

봄에 피는 꽃은 잎보다 먼저 피어납니다. 긴 겨울을 견디고 꽃샘추위도 이겨내며 피는 꽃은 그만큼 마음이 조급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면서 일찍 핀 꽃은 성급하게 집니다. 봄이 안타까운 것은 꽃의 생명이 길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데다 시인을 더욱 마음 졸이게 하는 것은 간밤에 줄기차게 내린 비로 인하여 꽃이 한꺼번에 져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심안에 저절로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산 아래 초가집 앞으로 개울물이 흐르고,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성긴 울타리 안의 마당에 꽃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밤을 새워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는 끊임이 없고, 그 비로 인하여 개울물이 불어났습니다. 새벽에 비가 갠 후 마당에 나가보니 전날 활짝 피웠던 꽃들이 마당 가득 떨어져 비에 젖어 있습니다.

오래도록 기다려 맞은 봄은 그렇게 성급하게 꽃이 지듯 속절없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