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비결은 엉덩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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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비결은 엉덩이에 있다
  • 지호원 작가
  • 승인 2019.09.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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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원 작가의 글쓰기 강좌①

 

일러스트_정진웅
일러스트_정진웅

 

시대를 뛰어넘는 카사노바의 연애 비결

바람둥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카사노바를 연상한다. 18세기 이탈리아에 실존했던 카사노바(17251798)는 오늘날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바람둥이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외모는 어땠을까?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을까? 대답은 글쎄다. 전해지는 초상화를 보면 그는 원빈이나 장동권 같은 조각 미남도, 소지섭같이 우수에 찬 인물도 아니다. 그냥 우리가 길을 가다 흔히 볼 수 있는 모나지 않은 둥근 동안의 얼굴을 가진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그런 그가 사후 2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이유는 뭘까? 답은 그가 남긴 자서전에 있다. 국내에서는 불멸의 유혹이라고 번역된 카사노바의 자서전에서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수많은 여자와 사랑을 나눴고, 그중에는 유부녀와 수녀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자유분방함 때문에 그는 감옥에 가게 되는데 당시 그에게 내려진 죄명은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이 악마와 같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악마와 같은 카사노바의 연애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연애 비법이 궁금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렇게 악마와 같은 연예비법을 가진 카사노바 역시 태어나서 처음 연애를 할 때는 가슴이 뛰고 떨리지 않았을까?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누구나 처음에는 노트의 여백이나 모니터 안에서 깜박거리는 커서를 보면서 무엇을 적을까 망설이게 된다.

아니 어쩌면 뭔가를 써야 한다는 초조함에 울렁증까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자기 생각을 풀어가고 글로 표현해야 하는지 경험이 없어서일 뿐이다. 만약 단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의 용기를 내서 깜박이는 커서를 응시한다면 당신도 언젠가는 악마와 같이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을 가졌다는 글쓰기의 카사노바가 될 수가 있다.

문제는 글쓰기에 대한 당신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뿐이다.

글쓰기의 비결은 엉덩이에 있다

사회생활에서 누군가를 처음 만나 서로 명함을 건네고 나면 대개 열 명 중 서너 명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 고 묻는다. 내가 건넨 명함에 새겨진 작가라는 단어 때문이다. 달랑 이름 석 자만 넣기가 뭐해서 이름 뒤에 직업을 넣은 것이 받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했거나. 아니면 그냥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인사치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받는 나로서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 말문이 턱! 하고 막혀온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그런 비결이 있기는 있는 건지 나 역시 궁금하다. 그런 궁금증은 어느 날인가 TV에 나온 소설가 황석영의 다음과 같은 말 한마디로 풀렸다.

글은 궁뎅이로 쓰는 것이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쉬 짐작한다. 다름 아닌 끈기와 노력이라는 뜻이다.

살아가면서 궁둥이는 무거워서도 가벼워서도 안 된다. 궁둥이가 무거우면 행동이 둔하거나 미련해 보이고, 너무 가벼우면 계산적이고 약삭빠르다는 평가도 받게 된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궁둥이가 무거워야 한단다.

그러나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작가들도 궁둥이를 오래 붙이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뇌는 ON OFF로 표시된 전자기기의 전원 버튼 같지 않아서 책상 앞에 앉았다고 해서 공부가 바로 되는 것도,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생각에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해서 문장으로 표현하는 글을 그냥 의자에 궁둥이만 붙이고 있다고 해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지금 이 순간의 나처럼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바로 말해 욕심은 많은 데 생각이 엉켜 손이 쉬 풀리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는 자리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유혹이 많다.

황석영이 말한 궁뎅이란 바로 이런 유혹을 이겨내는 힘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는 만화영화 캔디의 주제곡처럼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술자리나 데이트나 그보다 더 달콤함 유혹이 있을지라도 자신이 스스로 정한 시간 동안은 무조건 책상 앞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말과 글

인간 역사는 수렵이나 유목에서 벗어나 농경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문화가 빠른 속도로 발달하였다. 문자를 비롯한 음악, 무용, 미술,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탄생한 것이다. 글쓰기의 시각에서 보면 이들 예술 장르 또한 표현방법만 다를 뿐 글쓰기와 같다. 그림은 눈으로 보여주는 글쓰기며, 무용은 몸으로 나타내는 글쓰기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글 이전에 그림이 있었다. 동굴벽화도 그중 하나다. 아니 그 시대엔 그림이 글이었다. 지금도 어린아이들은 글을 배우기 전에 그림부터 그린다. 그림책을 읽으며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글쓰기 이외에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은 뭐가 있나 생각해보자.

바로 말이다!

말은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쉽게 생각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방법이다.

성경에 보면 첫 구절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로 시작된다. 신약전서 요한복음 첫 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기독교인도 아닌 내가 성경 이야기를 꺼낸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곧 그 사람을 나타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근대 역사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말을 잘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히틀러다. 무명정치인이었던 그는 탁월한 연설로 당시 대부분의 독일 국민이 원하는 것을 주장하면서 단시간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젊은 시절,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여 경제적 고난의 시대를 겪게 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상권은 여전히 유대인들이 쥐고 있어 독일 국민의 불만은 매우 컸다. 히틀러는 바로 그런 불만을 대중에게 강조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나갔다. 즉 연설을 통해 대중의 불만을 표출하고 선동하고 현혹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단단하게 마련한 것이다. 말의 힘은 이렇듯 상황에 따라 강력하다.

말은 소리다. 사람은 보통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80%를 시각에 의존한다. 그다음이 청각, 촉각, 미각, 후각 순이다. 하지만 청각은 시각보다 더 큰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TV보다 라디오를 들을 때 인간의 상상력은 더 활발해진다. 그것은 80%를 차지하는 시각은 절대 교주와 같이 사람에게 상상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청각은 마지막까지 남는 가장 예민한 신체기관이라고 한다. 죽기 직전, 모든 신체기관이 정지 상태일 때도 청각만은 살아서 소리를 듣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귀한 청각을 소리를 듣는 데만 쓰지 말고 글을 쓰는 데도 활용해보는 것이다.

어느 시인은 글쓰기 비법 중 하나로 여행 가서 사진을 찍지 말고 소리를 녹음해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녹음한 소리를 집에 돌아와 들으면서 글로 옮겨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귀로 듣는 것을 상상해서 글로 써보라는 뜻이다. 나는 아직 그런 방법을 실행해보지 않았지만, 그 의견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청각뿐만 아니라 손으로 만지기, 코로 냄새 맡기, 혀로 맛보기 등 오감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런 오감을 상호 교차해서 사용해보는 것은 글쓰기 훈련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보이지 않는 물체를 만져보고 냄새 맡고 맛을 본 후, 그 느낌을 써서 읽어보면 글을 매개로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 총동원된 글쓰기 연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말보다 더 강한 것이 글이다. 말은 입을 통해 세상에 나오는 순간 때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 울림이 짧아 공중에서 곧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글은 시간과 관계없이 기록을 통해 두고두고 남는다.


지호원 작가
지호원 작가

서울에서 태어나 199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젊은 시절, 출판사와 광고회사에 다니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부양해야 하는 발가락이 40개가 되면서 프리랜서 원고 노동자로 돌아서 기업역사 집필에 올인하고 있다. CJ그룹, KCC그룹, 삼성전자, 제일은행, 호남석유화학, 한국가스안전공사, 코스콤 등 국내 35개 기업의 역사를 써왔으며, 현재 ‘마음으로 쓰는 글쓰기’라는 책 집필과 함께 한국시문화회관, 로터리클럽, 작은 도서관 모임 등에서 글쓰기 강의도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