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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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1.01.2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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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사피엔스’는 제목 그대로 인간종에 대한 역사적, 생물학적 보고서다. 인류의 문명과 역사에 대해 말하지만 결국에는 인간의 행복으로 귀결한다. 600쪽이 넘는 분량의 인류 빅 히스토리에 대한 내용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책을 생각나게 한다. 결국, 인류의 유구한 발전이 인간의 행복에 기여했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앞으로 인간은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사피엔스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협동할 수 있는 능력과 허구의 존재를 만들 수 있어서

3만 년 전 지구상에는 호모사피엔스 외에도 5종의 인류가 있었다. 동부아프리카의 호모사피엔스, 유럽의 네안데르탈인, 아시아의 직립원인 등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호모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다. 나머지 인류들은 호모사피엔스에게 모두 멸종당했다. 호모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지금의 인류 조상은 이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3번의 큰 혁명을 통해 발전한다. 첫째는 7만 년 전의 인지 혁명. 도구와 물건과 예술품을 만드는 똑똑한 인간으로의 진화이다. 두번째는 만이천 년 전의 농업혁명으로 유목 생활의 인류가 농경정착의 생활로 접어드는데 이는 인구를 증가시켰지만, 인간을 노동으로 힘들게 하고 농작물에 구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번째는 500년 전의 과학혁명으로 그중에서도 250년 전의 산업혁명과 50년 전의 정보혁명이 있다. 사피엔스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동물 중 유일하게 다수가 함께 협동할 수 있는 능력과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의 존재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피엔스를 발전하게 한 허구의 존재는 다름 아닌 신, 국가, 회사, 돈, 인권과 같은 개념들이다. 사피엔스는 그런 허구의 개념 아래 맹렬히 뭉치고 열심히 복종하고 끊임없이 추구함으로써 오늘을 이룬다.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이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일 뿐이다. 우리의 삶이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매 순간 얼마나 행복을 느끼며 사느냐 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다. 어떤 삶이 인간에게 행복한 삶이며 인류의 역사는 과연 인류 행복에 기여했는가 하는 것이다.

행복의 크기는 정해진 수치만큼만 존재한다

행복이란 개념은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듯 측정하기도 어렵다. 매 순간 변화하는 순간적 요동에 지나지 않는다. 5분 전에 즐거웠어도 금방 슬퍼지는 게 행복의 감정이다. 과학에서 밝혀낸 행복은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 분비물에 의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총량 불변의 법칙으로 작동하는데 인간이 어떤 일에 대해 느끼는 행복의 크기는 우리 뇌의 생화학 시스템에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중세시대 농부가 토담집을 갖게 되었을 때 느끼는 행복이 세로토닌 8이었다면 지금의 갑부가 100억대의 집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행복 또한 같은 수치 8이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느끼는 행복은 어떤 외부적 가치와 물질과 관계없이 우리 몸에는 이미 정해진 수치만큼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풍요와 물질이 과거 궁핍했던 시절의 행복을 능가할 수 없는 것이며, 문명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행복의 크기가 더 커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보면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나 이데올로기에 시간을 그만 낭비하고 우리를 정말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방대한 이 책은 인간 행복에 대한 고찰서이다.

신이 된 사피엔스 이제 남은 길은...

인류의 과학발전은 결국 파국을 예고한다. 호모사피엔스는 이제 신이 되었다. 지구의 주인이자 생태계의 파괴자다. 신이 하던 자연선택의 지적설계를 이제 호모사피엔스가 한다.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으로 불리는 과학을 통해서이며 그 작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인간이 지금 진행하는 공학들은 우리 종인 호모사피엔스를 멸종시키고 이 지구상에 또 다른 생명체를 탄생시킬지도 모른다. 거기다 인간은 이제 죽음의 영역에까지 도전하려고 한다. 길가메시 프로젝트에 비유되는 죽음에의 도전은 인류를 새로운 종으로 변환시킬 것이다. 영원히 살고 싶은 소망은 마침내 영원히 멸종하는 사태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호모사피엔스가 사라진 후 남은 종에게는 호모사피엔스가 그리도 목숨 걸고 지켰던 종교, 이데올로기, 국가, 계급의 가치는 더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1969년 7월 20일 마침내 인간은 달에 착륙한다. 그와 관련하여 인간의 본성을 말해주는 만담 같은 전설이 있다.

<미국 서부사막에서 달 착륙 연습을 하던 우주비행사들을 본 늙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다가와 지금 무엇 하는 중이냐고 물었다. 우주비행사들은 달 탐험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고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달에 가거든 우리들의 메시지를 그곳에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인디언 말이라 알 수 없었던 우주비행사들은 기지로 돌아와 통역자를 수소문하여 그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통역사들이 번역한 문장은 이랬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이 책을 읽고 또 다른 일화 하나가 생각났다.

<지구가 우주를 운행하던 중 다른 행성을 만났다. 그 행성이 안부를 물었다. “어이 지구 잘 지내나?” 지구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요즘 힘들어 죽겠네.” “왜?” “여기엔 지금 호모사피엔스가 타고 있거든.” 그러자 행성이 지나가며 말했다. “뭘 고민하나, 금방 사라질 텐데.”>

우리는 모두 곧 이렇게 말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호모사피엔스로 살아서 행복했노라. 호모사피엔스여, 안녕!”

사피엔스/유발 하라리/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