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쪽, 쪽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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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쪽, 쪽이란 무엇인가?
  • 박승천 기자
  • 승인 2021.01.19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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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얼굴의 반쪽
임산부 배려석
임산부 배려석

 친구를 만나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코로나로 여러 명이 만나지는 못하고 세 명이서 식사와 술을 마셨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고, 뭔가 다른 세상을 살게 될 거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지하철은 휴일 귀가 시간인데도 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앞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있었습니다.

남겨 둔 배려석
남겨 둔 배려석

승객 두 명이 올라왔지만, 바깥 자리 제일 좋은 좌석은 비워놓고 앉았습니다. 혹시나 모를 임산부가 탈까 그 자리는 비워두는 것이 시민들의 교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선진국으로 생각해온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은 코로나 감염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발병 초기 그들은 한국식 방역은 강압적인 통치나 유교적 집단주의에 의한 비민주적인 방식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지나고 보니 요즘 그들은 공산주의 방식보다 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지역봉쇄와  통행금지, 끔찍한 액수의 벌금을 부과하면서도 방역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난 미국은 장의사가 더 이상 시체를 처리할 수 없어서 시신을 받지 못하고, 프랑스는 저녁 6시면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국가에서는 일정수 이상의 시위 인원이 모이면 이내 폭도로 변하여 가게를 약탈하고 차량에 불지르고 기물을 파손합니다.  한국은 시위대가 수십만 명이 모여도 제지하는 경찰에게는 대항하지만 가게를 약탈하거나 기물을 부수지는 않습니다.

  우리말에는 비속어지만 "쪽팔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지켜보든 말든 어떤 경우에도 쪽팔릴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쪽은 얼굴의 비속 표현인 낯짝의 한쪽을 이르는 말입니다.

  한국인에게 낯은 자신의 명예와 인격을 대신합니다. 체면이라는 단어로 정리됩니다. 한국인 개인의 비행을 견제하는 사회적 장치는 경찰의 공권력보다는 주위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지인이나 자신을 지켜볼 수 있는 이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리 속에서 자신의 쪽을 지켜볼 수 있는 주위의 지인을 의식하기에 불법적이거나 비행에 빠질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사회적 불의나 비리에 대해서는 집단적인 힘을 발휘하고 맹렬한 저항으로 맞섭니다. 이를 떼법이라고 합니다. 이  떼법은 법령에 우선합니다. 아직 법 조문은 없지만,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법을 집단의 힘으로 집행해버립니다. 이런 행동양식도 자신의 쪽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지인이 지켜보는데 비겁자로 꼬리를 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운 행동에 나서는 일에도 자신의 쪽을 지켜보는 주위를 의식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이나 집단은 불행한 일을 당하고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개인이나 집단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갖게 합니다. 그러나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하는가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깊은 충격으로 무기력감에 빠지고 자존과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개인일 경우 실패하는 것이고, 집단은 흩어지고 다른 집단에 흡수되게 됩니다.

  또 하나는 불행을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유사한 실패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힘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실패를 극복하는데도 내부에는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하나는 힘을 키워서 고통을 가한 상대에게 더 지독한 방식으로 보복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새로운 적을 불러들이고 내부적인 독성으로 자가 중독을 일으키고 결국은 분열되는 길로 가게 됩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자신이 겪은 고난을 승화시키고 힘을 길러 상대를 포용하는 것입니다. 이 방향은 집단이나 개인을 이끌어갈 지도자나 인내, 관용, 포용력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일제의 압박과 동족상잔의 고난을 겪었습니다. 대중을 이끌 왕은 외침이 일어났을 때 궁궐을 버리고 제일 먼저 도망을 갔던 일을 역사로 기억합니다. 내전이 일어났을 때 대통령은 강을 먼저 건너고 대중들은 건너오지 못하게 다리를 끊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땅을 살아가는 한국인은 지도자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 시민들은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데 익숙해져 있고 그 방식에서도 놀라운 집단지성과 강렬한 집단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우리는 놀라운 힘을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의 집단지성과 쪽이라는 명예와 인격으로 세상을 포용하고 자신과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