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영혼과 교감하는 가을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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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영혼과 교감하는 가을 산책길
  • 이영재 기자
  • 승인 2020.11.14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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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시가 있는 윤동주문학관
윤동주 문학관 초입

 

푸르렀던 나무들이 붉어지는 가을, 북한산과 맞닿은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의 전경도 붉게 물들어간다. 기존에 청운수도가압장(가압장: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서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돕는 곳)과 물탱크로 활용되던 건물은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2012년 윤동주문학관이 되어, 수년간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던 시절, 수성동 계곡 가까이에서 하숙을 하며 '서시'와 같은 아름다운 시들을 써 왔기에 이곳 종로에 윤동주문학관이 지어졌다고 한다. 깊어가는 가을날, 이곳에 들러 하늘처럼 맑은 삶을 살고자 했던 윤동주 시인의 마음을 느껴 보는건 어떨까요. 

 

가압장이었던 문학관 내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겠노라, 라는 삶에 대한 소망과 의지를 담는 서시는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삶의 고난과 역경을 의미하는 바람과 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삶을 추구하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자는 윤동주 시인의 강인함과 굳은 의지를 닮아 우리도 힘든 삶 속에서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동주 시인 영혼의 터 표지석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어가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우물, 그 우물 안에는 아름답고 순수한 풍경이 담겨 있다. 시의 화자는 우물을 찾아가고 돌아갔다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미움, 연민, 다시 미움, 끝내는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윤동주 시인은 식민지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한편으로 애증을 느끼면서, 우물 속의 이상과 초라한 현실에 대해 부조화를 느끼다 끝내 화해하게 된다. 우리들의 삶에서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상과 때로는 그 이상과 다른 현실 속에서 힘들어할지 모른다. 그 때 이 시를 되뇌어 보며 윤동주 시인의 정신을 새겨 보는 건 어떨까?

 

문학관 카페 가는 길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은 특히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이 부분이 익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별 헤는 밤은 인생의 여러 시점을 담고 있다는 데서 독특한데, 현재로 시작하다가 과거를 그리워하며 회상하고, 다시 현재의 삶을 성찰한 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며 마무리한다. "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상을 동경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주제인데, 특히 마지막의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라 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생명력을 볼 수 있다. 추운 겨울도 결국 지나가고 다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듯, 우리들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문학관 뒤 도성길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다가온 11월,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도 있고, 전국민이 코로나로 인해 힘든 시기에 하루하루 일상에 지쳐 가는 때도 더러 있곤 한다. 그럴 때는 "우리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문학관에 들러 보자. 상처 입고 지친 우리 몸과 마음에 윤동주 시인의 시가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다독임을 주어, 다시금 삶의 물살이 힘차게 흐를 수 있게끔 하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문학관 정보
주소: 종로구 창의문로 119
전화번호: 02-2148-4175
개관 시간: 매일 10:00-18:00, 월요일 휴무,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휴관
관람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