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의 노래(秋夜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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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의 노래(秋夜曲)
  • 曠坡(광파) 선생
  • 승인 2020.10.2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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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지는 소리에 가을이 깊어가네

   가을밤의 노래(秋夜曲)

 

계백초생추로미(桂魄初生秋露微)/초생달 뜨고 가을 이슬 살짝 내렸으나

경라이박미갱의(輕羅已薄未更衣)/비단옷이 가볍건만 갈아입지 못하였네

은쟁야구은근롱(銀箏夜久殷勤弄)/은으로 만든 현악기 은근히 타보지만

심겁공방불인귀(心怯空房不忍歸)/빈방이 허전하여 차마 들어가지 못하네

 

빈방의 두려움

중국 당나라 때의 대표적인 풍류 시인으로 잘 알려진 왕유(王維)의 시입니다. 그는 9세 때부터 이미 글을 지었을 정도로 천재적인 기질을 타고났으며, 특히 예능에 능하여 시뿐만 아니라 음악과 그림에도 뛰어난 능력을 과시하였다고 합니다.

‘추야곡’이라는 이 시는 ‘악부(樂府)’로 일종의 ‘규원시(閨怨詩)’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안방에서 여인이 한에 사무쳐 읊조리는 시입니다.

1구와 2구는 가을의 느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을 달밤에 뜰을 서성이며 누군가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 뼈아픈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비록 얇은 비단옷이지만 살짝 이슬까지 내린 을씨년스런 가을밤을 견디며 그녀는 차마 방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합니다.

3구와 4구는 주인공의 마음자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뜰을 서성이며 선뜻 방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것은 빈방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없는 빈방, 그것은 그리움에 사무친 여인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방을 따뜻하게 덥혀놓을지라도 빈방은 춥고 쓸쓸할 뿐입니다.

낙엽이 시나브로 지는 깊은 가을입니다. 아무리 옷깃을 여며도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쓸쓸한 그리움까지 달랠 수는 없습니다. 가을밤 이슬이 더욱 차가운 것은 대책 없는 그리움으로 인하여 마음이 그만큼 어수선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