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 한 편
마른 들꽃 향기
윤의섭
비릿한 빗줄기 사이로
마른 들꽃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었지
이슬 담뿍 머금은 가을 아침이면
한세상 건너가던 넋들도 괜시리
미련에 미쳐 꽃잎만 휘날렸지
그때 눈부신 꽃 한 잎 달라붙어 따라간 뒤
지금쯤 누군가의 꽃점으로 피었을까
마른 들꽃 잠시 살아나 제 몸의 향기 맡는다
이 메마른 향기
언젠가 안겼던 품에 흐르던 따사로운 체취
<사랑의 아포리즘>
-깊은 우물 속의 두레박질
생명을 잃어버린 마른 들꽃이 ‘잠시 살아나 제 몸의 향기를 맡는’ 것처럼, 옛사랑은 자취만 남은 자리에 피어나는 환각의 꽃이다. 어쩌면 사랑은 ‘현재형’보다 ‘과거형’일 때 더 아련하고 들꽃 같은 기품이 있어 보인다. 화려한 꽃보다 하찮은 들꽃이 더욱 깊은 가을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사랑의 반추는 깊은 우물 속의 두레박질처럼 공허한 마음을 뒤흔들어놓는다.
-우물이 깊을수록 시원한 샘물이 솟아나듯, 속 깊은 사랑은 자꾸만 공허한 마음속에 두레박을 드리우게 한다. 매번 헛손질인 줄 알면서도 그 사랑의 두레박질은 계속된다.
저작권자 © 종로마을 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