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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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자빠졌네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0.09.0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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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권의 책

 

개그우먼 김미화

80년대 순 악질 여사로 인기를 끌었던 그녀가 어느 날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문화방송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란 프로를 통해서다. 마침 방송 시간이 퇴근 시간과 맞아 퇴근길 승용차 안에서 자주 듣던 프로이다. 순 악질 여사의 웃기기 잘하는 연예인의 이미지만 갖고 있던 나에게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그녀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식하지 않은 화법에서 배어나는 그녀의 ‘유식함’은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잘난 체하는 남자 앵커나 학자연하는 교수 진행자들보다 그녀는 한 수 위였다. 진행 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을 보는 힘도 그녀가 더 고수였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블랙리스트 연예인에 올랐다는 뉴스와 함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더니 마침내 라디오 진행자 자리도 물러나게 되었다. 한 마디로 좌파 연예인, 폴리테이너라나? 나는 그런 보도와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웃기는 세상에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싶어 씁쓸했다.

어쨌거나 그녀가 용인에서 카페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 호미카페를 찾았다. 마침 그날은 ‘나꼽살’이라는 인터넷 방송 녹화가 있는 날이었다. 나꼽살은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를 패러디(?)한 ‘나는 꼽사리다’라는 좌담 방송이었다.

이 책은 그곳 호미카페에서 사게 되었다. 김미화 씨와 기념촬영도 하고 책에 사인도 받고 나꼽살 방송도 꼽사리로 잠깐 들었다. 그 후 집에 와 단숨에 읽어치운 책이다.

책 내용은 간단하다. 개그우먼 김미화가 방송 하차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과 억울함 그리고 싸움에서 얻게 된 경험들, 굳이 소득이라면 세상을 좀 더 알게 됐다고나 할까? 사실 그런 소득은 필요 없는 소득이다. 좋은 세상에서는 그런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다. 투사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세상이 만드는 것이다. 인간 김미화의 진솔한 인생 에세이 한 편을 본 느낌이 들었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진실, 폴리테이너의 억울함, 좌파연예인의 누명……. 대한민국에서만 일어날 만한 일들을 겪으면서 그녀는 더 강해졌고 더 세상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 대한민국 공영방송이라는 거대한 집단과 싸우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자존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일갈한다. “KBS 임원 여러분, 저에게 예의를 갖추십시오!”

그녀가 책 이곳저곳에 조금씩 써놓은 짧은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어떤 이념, 종교, 권력도 일상의 밥 한 끼, 자유보다 소중하지 않다.” 나는 그래서 그녀가 좋다.

웃기고 자빠졌네/김미화/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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