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말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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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말하는 사회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0.08.2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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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2015년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해 31인의 지식인이 우리 사회에 대한 책 한 권씩을 읽고 거기에 대한 독후감 형식으로 각자의 생각을 피력한 책이다. 저자들이 읽은 책들은 모두가 ‘무슨 무슨 사회’ 하는 제목으로 된 책들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을 여러 가지 용어를 써서 표현하고 있다. 정곡을 찌르는 그 몇 가지 예를 보면 소비사회, 낭비 사회. 하류사회, 분노 사회, 과시 사회, 과로 사회, 승자독식 사회, 영어계급사회, 팔꿈치 사회, 절벽사회 등 촌철의 단어들이 등장한다. 우리 사회는 왜 이리 절망과 한탄의 단어들로만 설명될 수밖에 없는가? 누구의 책임이며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답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옳은 것이 정의가 아니라 이긴 것이 정의가 되는 세상

김경집 교수의 ‘적법한 반칙을 깨트리자’는 글은 인상적이다. 김경집 교수는 강수돌의 ‘팔꿈치 사회’를 읽고 이 글을 썼다. 김 교수의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강수돌 교수의 팔꿈치 사회를 읽으면서 한숨과 분노가 이는 게 비단 나 뿐일까?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경쟁 사회에서 옆 사람은 벗이나 동료가 아니라 팔꿈치로 가격하여 떨어뜨려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정작 그 경쟁에서 이득을 보는 건 그 경쟁의 틀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숨은 권력이다. 그것이야말로 천박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모두를 경쟁의 전쟁터에 내모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무한경쟁과 착취의 이중 고리로 교묘하게 얽힌 사회는 과연 변화할 수 있을까?”

정의가 지켜지지 않은 세상에서는 옳은 것이 정의가 아니라 이긴 것이 정의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이 지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눈을 뜨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저자도 말했듯이 경쟁이란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서 얻는 전리품이 아니라 자신의 성찰 속에 자신의 힘을 기르는 바탕이다.

한 번만 더 속을 들여다보면 이 세상은 그런 경쟁의 틀 속에서 이긴 자들이 자신들의 지속적인 승리를 위해 이리저리 불공정하고 교묘하게 만들어 놓은 구조에 불과하다. 그 구조라는 프레임은 복잡하고 교묘할 뿐 아니라 마치 공정한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는 데서 많은 사람이 그 속을 바로 보지 못한다. 백전백패의 틀 속에서 패자는 끝없이 죄 없는 자신의 노력 부족만을 자책하며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사회를 바로 알자는 것은 바로 그 사회의 이런 프레임의 구조를 알자는 것이다. 경기에서 룰을 모르면 이길 수 없듯이 많은 사람의 사회 속에서 공정하지 못한 룰은 결국 소수의 기득권만을 위한 잔치로 늘 끝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외 여러 학자의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은 우리 모두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 가득하다. 내가 사는 세상을 내가 모르고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더구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맹신하는 것도 한심한 일 아닌가? 그게 바로 우리가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세상은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틀이 짜여 있지 않다

30여 명의 인사가 진단한 한국 사회에 대한 총평 격인 정수복의 맺음말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압축적으로 말해준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고 그 세상이 나에게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가를 냉철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세상의 판세를 읽을 줄 알아야 거기에서 내가 어떻게 운신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 세상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생각하듯 그렇게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그 틀이 짜여 있지 않다. 세상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직된 피조물의 집합체이다. 인간이 만든 세상이 공정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이다. 인간은 공정을 바라기엔 너무도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사회의 일면을 보면 그저 흥분하는 것으로 사회적 소임을 다한 것으로 착각한다. 자기비판과 사회적인 참여는 하지 않은 채 비난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일수록 사회를 바꾸는 데는 소극적일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위치에 오르면 더 할 수도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기반성과 적극적 참여 없는 현실비판은 그저 공허한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 사회를 바꾸려고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나 내가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바꾸었다.”는 어느 사회운동가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개인이 세상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그러나 깨달은 개인들이 모이면 세상은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모두 우리 미래의 자식 세대들에게 지금보다는 좀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 의무감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로 보고 있느냐 아니냐를 알 수 있다.

사회를 말하는 사회/정수복 외/북바이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