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安寧) 나의 고향 ‘박스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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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安寧) 나의 고향 ‘박스시티’
  • 이루나 기자
  • 승인 2020.08.07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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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봄이여서’ 비좁은 나의 방 한 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게 하고 싶다

한적한 점심의 인사동 거리엔 도시의 물고기들이 저마다 속삭인다.

오색빛깔의 해초를 지나 겹겹 사이로 나의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심해 바다 깊은 푸른 언덕을 지나 작은 상자 속 안을 가만 바라보니 등불을 켜고 미소 짓는

인어가 바닷속을 장식한다. 생태계의 무너짐 속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는 인어는 깊은 어둠 속을 뚫고 자신의 빛깔로 정화하고자 하는 듯 색들의 화음으로 자신의 봄을 표현하며

그 나름의 이야기를 써 나아간다. 나의 시간 속 작은 파편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하루들

물고기들은 그렇게 자신의 꼬리로 힘차게 노 저어 헤엄치며 숨을 내뱉는다.

 

서양화가 성순희 작가의 17번째 개인전인

<HARMONY OF LIFE [생의 화음] & BOX-CITY [박스시티]> 전이

85()부터 811()까지 7일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이즈 제1전시장에서 개최되고 있다. 201416번째 개인전 이후 6년 만에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서

성순희 작가는 접시, 항아리, , 촛불, , 물고기 등이 그려진 실내 정경과 일상의 소재를 바탕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형상화한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화백은 자신의 작가 노트에서

한겨울을 지나 추위가 가실 즈음부터 불가항력적인 질병의 위력이 온 세상을 올가미에 가두어 놓고 있다며, 한껏 아름다워야 할 봄이 불안함과 옥죄임으로 다가왔지만

반면 위기를 통해 자신을 성찰할 기회가 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이에 겸손한 마음으로 모두가 겪고 있을 답답함에 대한 위안과 치유를 작업을 통해 생각해 본다고 밝힌다.

 

 

HARMONY OF LIFE [생의 화음]

이번 전시는 두 가지 맥락으로 구성되었다.

첫째는 지난 20년 넘게 일관되게 천착했던 생의 화음이라는 주제다.

지난 작업과의 차이점은 한 화면에 재현적 공간과 무의식적 공간을 병치함으로써 삶에 관해 깊이 있는 사유에 다가서고자 했다는 점이다. 금방이라도 푸덕거리며 그릇 밖으로 툭 튀어 나갈 것만 같았던 청화백자 속 물고기는 자신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생태계인 그림 속을 유영한다. 화병에 꽂힌 꽃과 화병은 현실의 재현이지만 화병에 그려졌을 물고기는 재현적 이미지의 범주를 벗어난다. 화병 위의 이미지였을 물고기는 생의 화음이라는 또 하나의 그림틀을 통해 궁극적 해방감을 탐미한다.

BOX-CITY [박스시티]

두 번째 맥락은 박스시티라는 주제이다.

화면 안에서 빛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시간이 증발해버린 어스름한 공간, 누구인지 모를 사람들은 상자 안에서 태양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박스시티

보는 이에 따라 달동네일 수도, 신도시일 수도 있다.

물건을 담는 박스, 즉 육면체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종이상자는 정방형이거나 장방형의 구조로 되어 있어 그 형태가 아주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한 구조물인 박스를 크게 확대했을 때는 대도시의 현대적인 건축물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장방형의 지극히 간결한 외형의 현대적인 대형 빌딩과 박스를 동일시한데서 박스시티의 신화가 시작된다. 평소 상자를 쌓아 올린 형태의 작업을 해 온 그로서는 전혀 생소한 소재가 아니다. 여섯 면 가운데 한 면을 열어놓은 상자를 층층이 쌓아 올린 형태의, 민화의 책거리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업과도 상통하기에 그렇다.

최근의 '박스시티연작에서는 열린 면이 없는 닫힌 형태의 상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자리한다. 도시의 빌딩처럼 질서정연한 모양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력법칙을 벗어나 비뚤비뚤한 형태로 자리한다. 작품에서 느끼는 첫인상이 마치 판자촌 달동네를 보는 듯싶다. 질서정연하게 구획된 현대도시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지형지물에 따라 편리하게 자리를 잡은 판잣집 달동네의 풍경과 유사하다. 이와 같은 이미지는 그리기, 긁기, 뿌리기, 비비기, 지우기 등 다양한 표현기법이 적용되는 데다가, 지우고 다시 그리고 다시 지우는 일련의 반복되는 작업과정이 만들어낸 표정이다. 어쩌면 무의미하고 지루하다고 할 수 있는 작업과정을 통해 소재 하나하나가 지닌 개성을 중성화시킨다. 소재가 무엇인지는 알수 있되, 그 구체적인 형태를 선명히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애매하고 모호하며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신항섭미술평론가

The soul touches the composer's sensitivity.

('영혼은 작곡가의 감수성에 닿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