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자라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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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자라는 집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0.07.0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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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권의 책

 

이 책은 영화 <건축학 개론>이 생각나게 한다. 국민 여동생 수지의 첫사랑을 다룬 영화 <건축학 개론>은 사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지 건축학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듯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집 이야기를 하지만 실은 인생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애잔한 영화처럼 이 책은 집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부부가 건축사인 저자 내외는 집에 대한 아니 건축물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남다르다. 이들이 짓는 집은 스토리가 있고 자연이 있고 건강이 있으며 마침내 따뜻한 인생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그렇게 건축 얘기를 하는 듯하지만, 인생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올바른 의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직업은 허망하다

물감을 화선지에 바른다고 모두 화가가 아니듯 땅 위에 뚝딱 건축물을 올린다고 해서 모두 건축가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건축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그의 인생 철학을 엿보게 한다.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멋진 사람이다. 좋은 집을 짓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좋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고 살든, 그가 건축가든 예술가든 법률가든 결국 그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은 그의 생각이다. 올바른 의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직업은 허망하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본질을 모르고 산다. 본질은 방향이며 삶의 목적이기도 하다.

저자는 모든 건축물은 시간의 퇴적물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명품이라고 찬탄하는 병산서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그의 사회적 시선의 지향점을 알게 해준다. “병산서원의 수법이 아무리 멋지더라도 그 형식에만 감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왜곡된 엘리트의식을 가진 자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시대는 더는 없어야 합니다. 병산서원에서 우리가 수용해야 하는 것은 자유로웠던 당시 건축가의 자유로운 사고지 시끄럽고 더러운 바깥과는 단절하고 혼자 만대루나 입교당 마루에 앉아 사람과 자연을 내려다보면서 군림하는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저자의 생각 또한 좋다. “우리는 땅에 얹혀살고 있으면서도 땅의 아픔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나 돌이나 풀들에 너무 무관심했습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에 대해 멋진 고백을 한다. “저는 사회에 대한 가치 판단을 9시 뉴스를 보고 합니다. 세상일에 관한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참 편합니다. 저는 별로 모험을 즐기지 않고 남들이 걸었던 안전한 길로만 다니는 평범한 중년입니다.”

그의 자학적 패러독스는 읽는 이들이 가슴 뜨끔하게 한다. 그가 그 고백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은데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인생 내공이 있어야 하는지 노스님과 추사 김정희의 예를 든다. 스님이 평생 도를 닦아 얻은 것이 결국 아무 생각 없음이고 추사가 평생 공부해서 얻은 필력의 경지가 일곱 살 때의 글씨체라는 깨달음에 이르러서다.

집을 지으면서 자연을 보고 세상을 보고 그리고 인생을 본다

사회의식이라는 것이 이 사회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생각이지만 세상은 그런 의식조차도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생각하는 것조차 먹고사는 일에 밀려 사치품화 되어버린 요즈음 이 건축가가 보여주는 사회의식은 ‘건축가답지 않게’ 튼튼하다. 택시기사들이 자신들의 파업은 옳고 지하철 파업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는 노동자의 정의를 소개한다. “한국에서 근로자라는 개념은 노동자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위에서부터 주어진 것이며 노동자라는 개념을 부정하면서 수립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일을 겪다 보면 이런 현상들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 이 건축가는 이런 것도 놓치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는 건축가인지 책 곳곳에서 알 수 있다.

우리는 직업을 통해 일정 경지에 오른다. 직업이 어떤 일이든 모든 깨우침은 정상에서 만나는 법이다. 건축을 생업으로 하는 저자는 집을 지으면서 자연을 보고 세상을 보고 그리고 인생을 본다. 인생을 들여다보는 건축가가 좋은 집을 짓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지은 집에서 꼭 살아보고 싶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임형남, 노은주/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