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피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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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 피던 날
  • 박원 작가
  • 승인 2020.05.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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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의 배꽃
배꽃
배꽃

 어제는 수락산 자락에서 오랫만에 그림을 그렸지요.. 이미 복사꽃도 배꽃도 사라진 늦봄과 초여름의 계절인데 하루종일 장마처럼 비가 내렸습니다. 다행히 점심을  예약한 식당 마당에 커다란 천막이 쳐져 있어 그 아래 자리를 잡았지요. 거추장스런 그림도구를 펼쳐 놓으니 상당하더군요.

  봄을 보내고 나면 왠지 한해가 간 듯해서 이맘 때면 늘 이유없는 서글픔에 잠깁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배꽃이 가득했던 주위를 상상했어요. 이미 푸르게 변해버렸지만 배밭을 열심히 그렸답니다.

  지나가는 동료들이 꽃은 이미 져버렸는데 한창 만발한 배밭을 그렸다고 사기치느냐고 농담을 했어요.  대꾸도 않았습니다. 제철에 찿아와 배꽃을 그렸다 해도 내 재주로는 실물을 제대로 그리기엔 역부족일테고 마음 내키는데로 그렸지요..
 
   배꽃을 그리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어요. 배꽃은 참 고운 여인의 자태를 닮은 꽃이라구요. 꽃잎이 청초한 건 두말할 나위도 없고, 소박한 향기가 참 그윽했어요. 예쁜 꽃이나 화려한 여인, 멋진 건물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기엔 웬지 거북해요.

 강한 향기가 역겹다거나 뭔가 안좋은 의도가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아 경계심을 떨칠 수 없는데, 배꽃은 참 친근해요. 아마 어릴적 시골집 울타리 너머에 자라던 나무라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내년 봄  배꽃이 피는 때가 다시 기다려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