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묻고 삶으로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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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묻고 삶으로 답하라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0.05.0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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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서양문명의 두 줄기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철학은 인간의 삶에 대한 학문이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사실 우리 삶에서 이걸 놓치고 사는 삶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모든 학문의 뿌리와 근본은 그래서 철학이다. 대부분의 철학책이 두껍듯이 이 책도 375쪽에 달한다. 인간의 사는 일이 어디 얇은 두께로 설명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서양철학의 흐름과 변천을 잘 보여준다. 서양문명의 바탕을 이루는 두 줄기는 그리스로마 문명으로 대변되는 헬레니즘과 기독교 문명의 헤브라이즘이다. 그리스로마 문명의 대표는 스토아철학이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스토아철학은 인간의 삶은 우주와 조화, 신의 섭리,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사는 삶을 좋은 삶이라고 말한다. 로마의 철학자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그런 스토아철학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스토아철학은 이후 기독교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는데 두 철학 차이의 핵심은 구원의 방법이다. 스토아철학이 우주질서에 순응하는 삶을 강조했지만 기독교는 거기에 구원이라는 메시지를 추가한다. 인간 죽음의 본능적 두려움에 대한 구원으로서 천당과 부활이라는 새로운 제시가 철학의 흐름을 바꿔 놓는다. 기독교는 종교로서 철학을 능가한다. 이런 기독교 철학은 오랫동안 인간의 삶을 지배해왔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운명을 긍정하라 '아모르 파티'

기독교 철학에 대한 반격은 바로 우상의 해체를 말하는 니체의 철학이다. 니체는, 우상은 물론 모든 인위와 설정을 거부한다. 인간을 초월하는 그 무엇도 없다는 게 니체 철학의 핵심이다. 니체의 망치라고 표현되는 니체 철학은 모든 우상의 타파를 주장하며, 기존의 기독교 철학에 망치를 가격한다. 운명을 긍정하라는 뜻의 ‘아모르파티’는 조금 덜 희망하고 조금 덜 후회하고 조금 더 사랑하는 것이며 시간은 오로지 현재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리의 희망은 뭔가를 갈구하는 것인데, 그것은 삶의 의욕을 북돋우는 게 아니라 불행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스토아철학, 기독교 철학, 그리고 니체로 이어진 철학의 흐름은 근대에 들어 하이데거의 등장을 맞는다. 하이데거는 작금의 자본주의 세계화에 대한 폐해를 정확히 진단한다. 세계화의 위험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본의 양극화, 빈익빈, 부익부의 부작용보다는 의식개념의 해체와 망각에 대한 위험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결국 역사의 박탈과 무의미화로 이어지고 기술세계가 맹목적인 경쟁과 무목적의 성장으로 치닫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기술의 승리는 수단이 목적을 물리치는 세상을 만든다. 기술의 광란에 철학은 줄행랑치고 기술의 폭주는 사상의 부재를 초래한다. 이러한 사회는 통제가 필요한데 작금의 민주주의라는 제도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하이데거의 판단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사람들의 선거 판단을 다시 기술이 통제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각종 여론 매체와 매스컴을 통해 왜곡과 호도, 사실을 조작하고 시민을 선동한다. 하이데거는 이를 해결하려는 방법으로는 민주주의로는 불가능하며 권위주의 체제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전문지식은 관념으로 시작해서 쓰레기로 끝난다

학자들은 자신의 외부 현상에 대해서는 천재적 기질과 올바른 발언을 쏟아놓지만 자기 내부의 문제, 즉 자신의 문제로 연결될 때에는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할 때가 많다.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가 그렇고 일제 강점하에서 우리 지식인들의 친일행태가 그렇다. 사회정의를 부르짖다가도 말년에 자신의 현실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고 형이하학적인 전문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인간의 행태에 대해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전문지식은 관념으로 시작해서 쓰레기로 끝난다.” 기술적 전문화의 무의미성에 대한 경고다.

책의 후반부 결론에 이르면 철학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 결국 철학이란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 축적돼온 학문과 지식이 끝없이 반복하고 순환된다는 느낌이다. 인간의 문명은 기술로 치닫고 발전에 따른 반작용이 다시 철학을 생각하게 하고, 철학은 결국 인간 본질로 들어가는 문제다. 그러한 인간의 명제는 어찌 보면 과거 그리스로마 철학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실존하는 존재이다. 우리에게 실존 이외에는 없다. 우리의 실존을 망치는 두 가지 해악은 지나가 버린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라는 시간에 대한 기대이다. 존재하지 않은 두 가지를 생각하느라 우리는 지금의 현실을 놓치고 있다. 사람 사는 일을 어디 한마디로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아래의 말들이 떠올랐다.

"아모르파티, 카르페 디엠 그리고 메멘토 모리

(Amor fati. Carpe diem, Memento mori)

운명을 사랑하라, 현재를 즐겨라, 그리고 죽음을 기억하라.”

철학으로 묻고 삶으로 답하라/뤽 페리/책읽는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