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보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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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보자(상)
  • 지호원
  • 승인 2020.03.1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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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원 작가의 글쓰기 강좌(19)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일기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나이를 떠나 외로움은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신이 부자이든 가난하든,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구분하지 않고 인간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준 두 가지가 있다면 바로 시간과 외로움일 것이다. 시간이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을 좌우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명예를 얻을 수도, 권력을 얻을 수도, 부를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 속에 사는 우리는 점점 늙어간다. 마치 한여름 뜨겁게 내리쬐던 열정이나 행복 같은 강렬함은 사라지고, 대신 한 겨울 오후 다섯 시가 지나면 어둠이 내리는 저녁 시간이 되는 것처럼 소위 중년과 노년이라는 시간을 맞으면서 이런저런 외로움은 어쩔 수 없이 배(培)가 된다.

물론 외로움이란 나이에 따라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소년 시절에도 청년 시절에도, 그리고 장년에게도 무시로 찾아온다. 신이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눠준 시간과 같이 외로움도 불쑥불쑥 인생 어디에선가 반갑지 않게 찾아오는 것이다.

열세 살 소녀가 느꼈던 외로움이 ‘안네의 일기’라는 작품을 남겼듯, 외로움은 사람에게 글을 쓰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그것이 습관화될 때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주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외로움이 생각의 숙성과정을 거치면 훌륭한 글이 될 수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1970년 마흔이라는 당시로써는 조금은 뒤늦은 나이에 문단에 데뷔하여 40여 년 넘게 한국문학을 이끌어가는 주요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어쩌면 그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커서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이 잔소리로만 느껴졌을 때 터진 둑처럼 새어 나오는 외로움을 소설이라는 글쓰기로 풀어냈고 그것이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문학이 된 것이다.

이런 사례는 비단 박완서 작가뿐만 아니다. 시인이나 수필가 중에도 대중적 지명도를 떠나 늦깎이로 데뷔해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생각을 숙성시킨다. 마치 빵집에 진열된 여러 가지 모양의 맛있는 빵이 처음엔 그냥 밀가루와 달걀과 우유와 이스트로 버무려진 반죽이었다. 하지만 그 반죽으로 모양이 만들어지고 일정 시간 숙성과정을 거쳐 오븐에서 구워지면 가면서 맛있는 빵으로 만들어진다. 이처럼 사람마다 가지는 외로움도 생각의 숙성과정을 거치게 되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훌륭한 글이 될 수 있다.

일기는 나만의 공간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작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내가 추전 하는 방식은 일기(日記)다. 안네처럼 자신에게 스며드는 외로움을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써보자, 일기는 나만의 공간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이다. 비록 봐주는 관객이 없이 힘이 빠질지라도 그 안에서는 누군가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자유로움이 있다. 마치 신이 어둠 속에서 빛을 만들어 천지를 창조하듯 내가 조물주가 돼서 나만의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이를 ‘전지적 작가시점(全知的作家視點)’이라고 하는데 소설 쓰기의 마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작가가 소설 바깥에서 마치 전지적인 신이나 된 것처럼 등장인물의 행동에서부터 내면세계까지 속속들이 알고 심층 심리분석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방식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 등을 허구 속의 등장인물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일기에서도 이런 방식의 서술은 가능하다. 꼭 일기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의미다. 일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뿐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일기는 매우 바람직한 글쓰기 연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