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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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日記)
  • 지호원 작가
  • 승인 2020.03.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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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원작가의 글쓰기 강좌(18)

 

어느 날 책장을 뒤적이다 눈에 띈 책 한 권이 있었다. ‘안네의 일기’였다. 이 책이 나한테 있었나 싶게 오래 간직한 책이었다.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정권을 잡고 전쟁과 유대인 학살에 주력하던 시절인 1940년대, 13살의 독일 출신 유대인 소녀가 쓴 이 일기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일기의 내용이 사춘기를 겪는 한 소녀의 개인적 감성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그늘에 놓여있던 유럽의 모든 유대인의 당시 상황을 현실적으로 기록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약 2년간 나치의 시선을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가족과 함께 숨어 살았던 안네가 일기를 쓰게 된 동기는 외로움에서였다. 당시 독일의 거의 모든 유대인은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수용소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고, 안네의 가족은 이를 피해 암스테르담의 한 가옥에서 숨어 살며 마치 감옥에서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때문에 안네는 학교에 다닐 수도 친구를 사귈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며, 그렇게 지속되는 생활에서 느꼈던 외로움과 현실적 두려움 등을 일기로 기록해 두었다.

안네는 자신의 일기에서 일기를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내가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 말할 차례인데, 그건 한마디로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친구가 나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겠어요. 열세 살 먹은 여자아이가 스스로 이 세상에서 외톨이라고 느끼고 있다. 아니 실제로 외톨이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까요…….”

시대와 나이를 떠나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친구가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욱이 한참 꿈을 꾸고 자신에게 주어질 미래에 대한 상상에 빠져들 나이인 사춘기 소년 소녀가 외로움에 고독감을 느낀다는 것은 정말 슬픈 상황이다.

초중고에서 일본의 이지메와 우리 사회의 왕따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에 사춘기 시절의 그러한 외로움과 고독감은 노년층이 갖는 외로움에 비해 결코 작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연히 안네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서 내가 놀랐던 것은 13살 소녀가 일기장에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 고 표현한 부분이다. 그녀의 일기 한 부분을 짧게 인용해보자.

1942년  월 20일(토)

요사이 며칠동안 일기를 쓰지 않은 것은 일기 쓴다는 일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고 싶어서였어. 나 같은 사람이 일기를 쓰다니 이상한 일이지. 나는 지금까지 일기를 써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도대체 열세 살 먹은 소녀의 고백에 흥미를 가질 사람이 누가 있겠어?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야. 나는 쓰고 싶고, 가슴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모조리 털어놓고 싶어.

‘종이는 사람보다 참을성이 있다’는 말이 있지. 가끔 밖에 나갈까 말까를 정하는 것조차 귀찮아서 힘없이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우울한 날이면 이 말이 떠올라. 정말 종이는 참을성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야. 게다가 나는 남자든 여자든 참된 친구가 아닌 이상 일기장이란 이름이 붙은 이 노트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니, 여기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없을 거야.

이제 내가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가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어, 그것은 내게 참된 친구가 없기 때문이야…….

안네의 표현대로 종이는 인간보다도 더 잘 참고 견뎠다. 1942년 6월 12일부터 1944년 8월 1일까지 쓴 이 일기는 안네가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고 믿었던 종이에 그대로 남았다. 종이는 글을 만나 완성된다. 만년필이건 연필이건 붓이건 간에 손의 연장인 도구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종이는 기다리고 견딘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가족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안네의 아버지에 의해 1947년 출판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일기의 내용은 좁은 장소에 여러 사람과 함께 숨어 살아야 하는 스트레스, 페테르 판 펠스에 대한 첫사랑, 미래에의 희망에 대한 한 소녀의 이야기였지만, 당시 시대적으로 만연한 악 속에서도 인간의 선에 대한 꿋꿋한 믿음이 순수하고 핍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들에게는 용기를 주면서 안네의 일기는 당시 세계적으로 차별과 편협함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