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허페이 로보컵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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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허페이 로보컵에 대한 단상
  • 임현주 작가
  • 승인 2020.02.21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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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월드컵이 있다면 레고에는 로보컵(Robocup)이 있다. 오는 2050년 ‘인간과 로봇의 축구 대결’이라는 세기의 이벤트를 목표로 시작된 로보컵은 1997년 일본 나고야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창의 융합적 사고를 위해 재료 방법 사용에 제한 없어

로봇 축구 외에도 재난구조, 산업 자동화, 홈 오피스, 아마존 로보틱스 챌린지 등 다양한 종목으로 운영되며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한재권 박사와 데니스 홍을 배출한 대회로도 유명하다.

참가자들은 레고를 주로 활용하는 여느 국제 대회와는 달리 로봇 제작에 어떤 재료와 방법을 쓰더라도 제한을 받지 않는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제품일지라도 전혀 다른 기능을 탑재한 센서를 연결하거나 모터와 다른 주요부품의 동력을 보완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자유로운 로봇개발을 장려한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도록 창의 융합적 사고를 북돋워 주기 위함이다.

 

로보컵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슈퍼 팀 리그(Super Team League)는 대륙별로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선수들끼리 팀을 이룬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령 아시아에서 한 팀, 아프리카에서 한 팀, 남미에서 한 팀, 총 세 팀이 합쳐서 상대 팀과 경기를 펼친다. 언어뿐만이 아니라 제각각 다른 풍속과 역사적 배경을 지닌 나라에서 온 수십 명이 하나의 팀을 이룬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겐 신선하고 가치 있는 배움의 장이 될 수 있다.

연속적으로 날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대회 리그를 경험하고, 기간 내내 아이들은 대회장에서 동고동락하며 각국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눈다. 공통의 취미를 가진 아이들에게 언어는 장벽이 되지 못한다. 상대방의 작품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소통의 물꼬가 트인다. 놀이가 아이들에게 주는 축복이다.

대륙별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선수들로 한 팀 이루는 슈퍼 팀 리그

대회가 끝난 후에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SNS로 정보를 공유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도 한다. 적극적인 대화를 위해 영어에 관심을 가지고 친구들이 사는 나라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게 된다.

특별히 친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동문은 졸업 후 동창회에서 몇 번 얼굴을 보고 마는 게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로보컵에서 만난 친구들은 다르다. 어린 시절 좋아하는 놀이를 함께했던 친구와의 추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아름다운 동화의 한 장면으로 남아 각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로보컵 동문이 단지 같은 학교를 졸업한 것 이상의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일례로 IBM, 구글, 아마존 등 세계적인 기업의 면접관들이 높은 관심도를 나타내는 것은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아이비리그 등 출신학교나 스펙보다 로보컵 참가 이력이라고 한다. 대부분 그들 역시 어린 시절을 레고와 함께 보냈기에 마치 소꿉친구를 만난 것처럼 남다른 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한국로보컵조직위원회가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나는 이때 조직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로보컵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게 되었다.

성장기의 다채로운 문화충돌 경험은 글로벌 시민의식의 근간이 된다. 해외로 조기유학을 떠나 학창시절을 보낸 아이들에게 그 나라가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순 있어도 전 세계를 아우르는 경험이 될 순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지구촌 곳곳의 문화를 체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2013 호주 브리즈번 로보컵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독일, 브라질, 캐나다 몬트리올까지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참가한 K.F.C. 팀에게 2015 중국 허페이 로보컵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로봇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우상이자 롤모델인 데니스 홍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때 데니스 홍은 휴머노이드 사이즈 축구 부문 우승컵을 거머쥐기도 했다. 대회 막바지에 이르러 긴장한 우리 팀원들을 격려해주십사 부탁드렸더니 박사님은 흔쾌히 나의 요구에 응해주었다.

“여러분들의 꿈을 따라가세요. 거기에 뭔가 있을 겁니다.”

데니스 홍 박사님은 팀원들을 격려하며 일일이 사진 촬영에 응해주는 등 따뜻한 배려와 친절을 베풀었다.

“쌤, 데니스 홍 박사님도 우리랑 로보컵 동문이죠?”

대회가 모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한 아이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렇다고 하자 저마다 환호성을 터뜨렸다. 로봇 영웅과 함께했던 순간의 감동이 아이들의 꿈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중학교 때 처음 이 대회에 출전한 팀원 가운데 몇은 세계적인 로봇공학자의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하여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다.

금년 2월에는 그 아이들이 후배들을 이끌고 중국 위해 시에서 열리는 로봇챌린지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부득이 취소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사한 허페이 로보컵을 떠올리며 하루빨리 이 안타까운 상황이 지나가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