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을 쓰는 두 가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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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을 쓰는 두 가지 길
  • 지호원 작가
  • 승인 2020.02.1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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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원 작가의 글쓰기 강좌(16)

 

명문을 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한 작품을 수십 년 동안 붙들고 고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수십 수백 편을 쓰는 것이다. 수많은 글을 쓰다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수많은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도 않을뿐더러, 썼다 해도 대개는 그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우리가 헤밍웨이나 톨스토이와 같은 점이 있다면, 그들이나 우리나 처음 쓴 초고는 엉망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헤밍웨이나 톨스토이는 열심히 고쳤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괴테는 <파우스트>를 60년 가까이 썼다.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60년간 쓰고 고치고 다듬으면 괴테처럼 못 쓰겠는가.

고치기는 재미있다. 틀린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강원국 작가는 글의 수정과 관련해 고수와 하수가 있다고 말한다. 잠시 그의 말을 빌려보자

“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잠깐 쓰고 오래 고친다. 못 쓰는 사람은 오래 쓰고 잠깐 고친다. 쓰다가 진이 빠져 고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꼴도 보기 싫다. 쓰기는 재미없고 힘들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백지를 응시하는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고치기는 재미있다. 틀린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내 글이 점차 개선돼가는 것을 보는 기쁨이 있다.

나는 글을 두 단계로 나눠 쓴다. 1단계로 쓰고, 2단계로 고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쓰면서 고친다. 머릿속으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그래서 글쓰기가 힘들다. 쓰면서 고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머릿속에 있는 걸 쥐어짜 꺼내기도 바쁜데, 그것을 고치기까지 하다니. 일단은 쓰고 나서 고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 찾아볼 것도 많고 확인할 것도 많다. 여기에 공을 들이자.

하수는 단어와 문장부터 고치려 든다. 고수는 전체 구조부터 본다. 하수는 첫 줄부터 고치지만, 고수는 중간부터도 보고, 끝에서 앞으로 반대로도 본다. 그래서 하수는 <수학의 정석> 1장만 공부하듯 첫 문단만 갖고 논다. 고수는 초고를 단지 고치기 위해 쓴 글쯤으로 여긴다.

또 하수는 초고를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그것에 얽매인다. 그래서 고수는 글을 쓰고 나면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지만, 하수는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고수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지, 설득력이 있는지, 흐름은 매끄러운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한다. 또한, 문맥 중심으로, 문단 별로 떼어서, 문장에 집중해서, 그리고 더 맞는 단어에 주안점을 두고 본다. 하수는 맞춤법에 매달린다.

고수는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고 있고, 하수는 무엇이 틀렸는지 모른다.

하수는 퇴고에 관해 핑계가 많다. '초안 쓰느라 진이 빠졌다.', '귀찮다', '시간 없다', '고쳐봤자 거기서 거기다', '고칠 게 없다' 등. 반면 고수는 핑계 댈 시간에 고친다. 하수는 쓰면서 고치느라 끝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에너지 고갈을 핑계로 흐지부지 끝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고수는 일단 쓴 후에 고치기 때문에 마무리를 짓지 못 하는 일은 없다. ​고수는 글을 쓴 후 일정 시간 묵혀둔다. 쓴 사람에서 읽는 독자로, 연기자에서 감독으로, 작가에서 평론가로 변신하는 시간이다.

쓰고 나면 글과 멀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 글이 익숙하게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칠 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시간은 세 가지 혜택을 준다. 글을 낯설게 하고, 내 역할을 바꿔주며, 생각을 숙성시킨다. 시간이 없으면 문밖이라도 나갔다 온다. 그러나 묵혀두는 시간이 너무 길면 안 된다. 감을 잃지 않는 지점까지라야 한다. 하수는 쓰자마자 곧바로 보기 때문에 고칠 게 없다고 한다. 당연하다. 방금 그렇게 썼다면, 그리 쓴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면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고.

고수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고, 출력해서 종이로도 보고, 소리 내 읽어도 본다. 처음에는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부분을 손으로 체크하고, 다음에 다시 읽으면서 체크한 부분을 고친다. 하수는 모니터로만 본다. 손, 눈, 입, 귀를 사용하는 고수와 눈만 쓰는 하수는 결과에서 차이가 크다. 고수는 짧게 여러 번 본다. 언뜻 보면 더 잘 보인다. 힘도 들지 않는다. 하수는 길게 한 번 본다.

고수는 장소와 시간을 바꿔가면서 본다. 하수는 그런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다. 고수는 쓴 글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준다. 하수는 지적이 두려워 혼자 끙끙댄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고수는 고칠 게 반드시 있다고 확신하고 본다. 하수는 혹시 고칠 게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본다. 나아가 고수는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고 있고, 하수는 무엇이 틀렸는지 모른다.

글을 고치려고 해도 고칠 것이 안 보인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둘 중 하나다. 초안을 완벽하게 썼거나, 무엇을 고쳐야 할지 모르거나. 나는 세 가지를 고친다. 먼저, 빠진 것이 없는지 본다. 놓친 게 있으면 채워 넣는다. 다음으로, 뺄 것이 없는지 본다. 빼도 되는 것은 무조건 뺀다. 동어반복도 그중 하나다. 예를 들면 '완전히 근절', '다른 차이점', '어려운 난관', '오랜 숙원', '보는 관점', '개인적인 사견', '미리 예약', '대강의 개요', '새로운 신제품', '고맙고 감사하다' 등이다.

'을/를/이/가/의'도 마찬가지다. '생각을 했다'는 '생각했다'로, '공부를 했다'는 '공부했다'로, '생각이 났다'는 '생각났다'로, '합의가 됐다'는 '합의됐다'로, '경제의 민주화'는 '경제 민주화'로 쓰자.

마지막으로 순서를 바꿀 것은 없는지 살펴본다.

순서만 바꿔도 글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을 앞에 넣을지, 뒤에 넣을지 늘 고민한다. 글을 읽는 사람이 잘 아는 내용일 경우에는 앞에 두는 게 맞다. '초두효과'를 겨냥한다. 잘 모르는 내용일 때는 뒤에 넣는 미괄식 구성을 통해 '최근 효과'를 노린다. ”

이러한 주장은 글쓰기를 시작하는 모든 사람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작가들 대부분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원고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