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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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면?
  • 지호원 작가
  • 승인 2020.02.0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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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원 작가의 글쓰기 강좌⑮

 

설경구가 주연했던 영화 <박하사탕>의 첫 시작은 주인공이 달려오는 열차 앞에 서서 ‘나 다시 돌아갈래’ 하며 소리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직업도 가족도 모두 잃고, 삶의 막장에 다다른 주인공의 그런 절규는 기차의 기적 소리를 뚫고 1999년이라는 시간에서 94년 여름, 87년 봄, 84년 가을, 80년 5월 그리고 마지막 79년 가을까지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플래시백’ 수법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물론이고 소설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의 하나다.

만약 글을 쓰는데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끙끙거리지 말고 이런 방법을 써보는 것도 하나의 글쓰기 기술이다. 플래시백은 독자를 사건의 중심으로 먼저 데려가 '풍덩 빠뜨리는' 방식이다. 그러고 나서 왜 그런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는지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것이다. 다만 이 방식이 이야기의 끝에서 앞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은 기억해 둬야 한다.

요즘 영화를 보면 이처럼 ‘사건의 중심’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아주 많이 오래된 구술문화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문화적 유산이다.

그 당시에는 연회에서 마치 모노드라마를 하듯이 서사시를 구연해냈다. 오늘날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도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연회에서 배경음악으로 쓰던 것들이다. 말하자면 서사시 구연도 배경음악과 비슷한 것이었다. 먹고 마시고 떠들어대는 청중들 앞에 서서 그들의 관심을 끌어야 했다. 당연히 첫 마디가 중요했다. 그래서 모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유명한 사람을 들이대거나 충격적인 첫 장면으로 시작했다. 고통이나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충격적인 장면은 대개 ‘사건의 중심’에 있었고,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일리아스≫도 이렇게 시작한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 일리아스, 호메로스/천병희, 숲, 2015년, 25쪽

즉 분노와 고통을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