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칼럼] 마을이 바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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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칼럼] 마을이 바로 세상이다
  • 윤호창(발행인)
  • 승인 2019.10.1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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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0년간의 영국 식민지지배를 당한 인도에서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인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 독립이 가까워지자 독립된 인도를 70만개의 인도 마을들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마을자치공화국 모습을 꿈꾸었습니다. 간디는 자신의 구상을 ‘마을자치 Vilage Swaraj’ (국내번역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녹색평론사)로 구체화해 출판을 하고, 다양한 정치세력들을 대상으로 설득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인도 정치인들은 간디의 구상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중앙집권국가를 만들어갑니다. 간디는 힌두주의자에게 암살을 당하고, 간디의 꿈은 꿈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마하트마 간디
마하트마 간디

 

중국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앞으로 현대 중국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모택동을 중심으로 전통 사회주의 방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양수명이란 철학자가 이끄는 향촌사회주의 방식이었습니다. 양수명은 농촌을 중심으로 해서 자치와 자립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지속가능한 중국을 만드는 길이라고 주장했지만, 모택동과 의 노선싸움에서 패배해고 농촌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생각을 실험하다 80년대에 사망했습니다. 근래에서 중국에서는 소수이지만 뜻있는 이들이 양수명 다시 읽기의 바람이 불고, 다양한 농촌공동체를 만드려는 실험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세계 인구 1,2위를 차지하는 간디의 인도와 양수명의 중국이 되었다면 아시아 아니 세계사는 크게 변화했을 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가정한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지만, 마을과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노력은 전 세계에서 더디지만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2010년 이전까지는 뜻있는 시민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마을자치운동이 일어났지만, 그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이뤄져 전국 수십개의 지방자치단체에서 마을지원센터를 만들고 주민들의 자치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종로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마을자치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도시재생센터 등 다양한 마을을 복원하기 위한 중간지원조직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에서 돈과 사람을 투입한다고 해서 마을이 말처럼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시절 우리는 근대화, 산업화과정에서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팔아치우고 없앴습니다. 마을의 공동정자, 우물은 말할 것은 없고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끈끈한 믿음과 신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간의 돈에 사람들이 서로를 배신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점점 사람들은 돈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사라진 마을의 정자와 우물은 돈을 들이면 그래도 복원할 수 있지만, 사람들간의 신뢰는 돈을 들이더라도 복원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생각없이 돈을 들이면 더 망가지고 무너질 뿐입니다. 행정에서 주도한 마을은 공간, 정자 등 외형적인 모습은 만들고 있는 것 같지만, 무너진 사람들간의 신뢰는 얼마나 복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는 낯선 타인에 대해 4명중에 3명이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나라는 4명 중에 1명만이 낯선 타인을 믿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불신의 사회에서는 사는 것이 불안하고, 행복감도 재미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최고의 자살율과 출산율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과 같은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이야 체감을 잘 못하지만 대학은 마을을 붕괴시키는 주범입니다. 지금 시골에서는 젊고 똑똑한 이들이 별로 없습니다. 젊고 똑똑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모두모두 큰 도시로 나가도록 했지요. 마치 시골과 농촌은 제 자식을 낳고 죽어가는 가시고기와 비슷한 모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모두에게 비참한 모습으로 달려옵니다. 도시는 너무 많아서 죽고, 농촌은 너무 없어서 죽는.. 함께 죽어가는 모습니다.

그래서 3년 전에 새로운 모습의 대안대학 같은 것이 없을까 해서 협동조합 마을대학 종로캠퍼스를 만들었습니다. 왜 십 수년 동안 우리나라는 아이들을 가장 낳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는 나라가 되어버렸을까요? 그것은 간디와 양수명이 꿈꾸었든 마을과 자치가 사라진 것과 많은 관련성이 있다고 봅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대부분은 마을 단위의 자치가 잘 되어있으며 주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높습니다.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국가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마을의 자치와 자립의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자치와 자립이 있어야만 마을의 신뢰가 높아지고, 신뢰가 높아져야 자치와 자립을 할 수 있는 둘은 순망치한의 관계입니다.

마을의 자치와 자립을 가로막는 것은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지역의 공론장을 만들어갈 수 있는 풀뿌리 언론이 없는 것도 그중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청와대에서 여의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시민들이 휴대폰으로 실시간으로 알지만 우리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권력들이 청와대에 여의도에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삶은 인간사회가 만든 권력이 좌우하기 때문에 권력이 많은 곳에 시선을 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엇이라 딱 부러지게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수 십 년간 고난과 고통 속에서 서민들은 직감하고, 체감한 일입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주변에 있으면 좀더 편리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삶도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청와대와 여의도에 눈길을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의도 그런 막강한 권력을 가지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수십년간 그렇게 해왔기에 습관적으로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한다’라는 말처럼요. 그런데 마을을 중심에 두고 하나 둘씩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우리 동장을 우리가 직접 선출할 수 없을까? 왜 종로구의원들은 중앙정당의 공천을 받아야만 할까? 왜 주민들이 내는 주민세는 주민들의 뜻대로 동네에서 가장 필요한 일을 하는데 사용하면 안될까? 이런 의문을 가지다 보면 재미있는 상상력이 절로 발동합니다.

어린시절 학교에서 배운 동화가 기억납니다. 거북이와 토끼라는 동화는 대부분 다 알고 있지요. 교과서에서는 잠자는 토끼, 게으른 토끼에 대한 경고로 끝나고 말지만, 보통 사람들이 잘모르는 속편도 있다고 합니다. 거북이가 거의 결승점에 도달할 무렵에 잠이 깬 토끼는 전속력으로 달려 거북이를 초월해 시합에서 이겨버립니다. 승자가 독식하는 우리 사회에 좀더 가까운 모습이지요. 성실하게 열심히 걸어갔지만 패배한 거북이는 화가 나고 분통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한 거북이는 다시 토끼에게 가서 시합 제안을 합니다. 토끼가 당연히 찬성을 하자, 거북이는 지난번에는 땅에서 했으니 이번에서 바다에서 하자고 합니다. 토끼가 우리 사회의 소수의 금수저라면, 거북이는 대부분을 차지하는 흙수저입니다. 거북이가 육지에서 토끼와 승부를 벌여 이기는 것은 가뭄에 콩나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고민한 거북이처럼 발상의 전환을 할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3500개의 마을자치공화국이 된다면 거북이가 바다에서 시합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이런 생각대로 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가 가장 발달되어 있다는 스위스에서는 제일 큰 권한이 우리나라의 동단위와 같은 ‘게마인데’에 있습니다. 스위스 국민들은 게인인데 주민총회를 열어 중요한 일을 논의하고, 결정하는데 익숙하고 게미인데에서 하기 힘든 이면 서울의 자치구와 같은 ‘칸톤’에 위임합니다. 칸톤도 하기 힘든 국가간의 조약이나 외교등과 같은 일들만 스위스연방국가가 하도록 하고 있지요. 스위스는 인구 800만 밖에 안되지만, 2500개의 게마인데와 26개의 칸톤을 통해 주민자치를 하고 있습니다. 풀뿌리 지역언론 ‘종로마을N'은 서울의 중심, 대한민국의 중심이라는 종로에서 이와 같은 뉴스와 정보를 공유하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600년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였던 종로에 관심 있는 이들이면 살던, 살지 않던 재미있게 함께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종로마을N 무엇이 있을까? 관심을 가진 이들이면 호기심을 발동삼아 재미있는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