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이렇게 지독하게 느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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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렇게 지독하게 느끼는 걸까?
  • 서촌지기
  • 승인 2019.10.12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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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배려하진 않는 담배연기
골목에서 피운 담배연기가 집안으로 들어오기도

 

근래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전국에 있는 돼지 농가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시국에 막내가 매일 매일 채운 칭찬스티커 판이 꽉 채워졌고, 이번 미션 성공의 선물이 캠핑이라, 예약해 둔 강화도를 가야 했다. 사실, 두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바빠서 1년 반 만에 떠나는 캠핑을 기다린 건 오히려 나였다. 얼른 막내가 칭찬스티커 판을 채워주기를 내심 기다렸다. 강화대교를 지나고 마을을 지나는 길에 도로에서 차량 방역을 두 번이나 지나친 것 같다. 양돈 농가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태풍 링링으로 강화도 논밭의 벼들이 누워있는 곳도 군데군데 있었다. 이미 벼를 벤 논에서는 풀냄새가 올라왔다. 노랗게 익은 황금벌판을 보니 마음이 넉넉해지고 편안하고 행복해져 왔다.

강화도는 언제나 정답이다!

고려산과 마니산이 자리 잡고 있고 해변과 갯벌을 따라 다양한 생물들이 있고 논농사와 밭농사 그리고 바닷일까지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지부터 일제강점기의 트리거 역할을 한 뼈아픈 강화도 조약의 현장까지 한반도의 역사가 곳곳에 있다. 강화도에 오면 제주도의 느낌이 나서 그럴까, 처음부터 짝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캠핑장에서
캠핑장에서

 

이번에 찾은 캠핑장은 연개소문 캠핑장이다. 믿거나 말거나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은 강화도 고려산에서 태어났고 이곳 강화도에서 무예를 연마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캠핑장 이름을 연개소문으로 지었나 추측해 본다.

캠핑장을 운영하는 젊은 부부는 외지인 같았다. 네이버 페이로 사이트를 결제하니, 현지인에게선 못 느끼는 아주 세련되고 친절한 안내 문자가 밤 10시가 넘어서도 즉각 왔었다. 역시나 관리동에서 체크인 같은 통과의례를 할 때 보니, 얼굴이 백옥같이 곱다. 강화도의 햇살과 바닷바람과는 영 무관한 피부다.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텐트와 타프를 치고 기다리던 화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때기 시작했다. 화로에 풍물시장 들러 사 온 조개와 새우를 올리고 냄비에서는 참소라를 넣고 삶고 있다. 기다리던 캠핑을 나온 막내는 쉬지 않고 조잘조잘 거린다. 완벽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힐링의 순간들이다. 주변을 보니 총 12개 정도의 텐트들이 쳐졌고 모든 텐트에서 장작불에 고기를 굽는다고 연기가 마을 뒷산을 가득 메웠다. 대부분 다녀 본 다른 캠핑장은 9시가 넘어가고 10시가 되면 묵언의 약속처럼 모두 조용하게 소곤소곤 댄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리 텐트 바로 뒤 언덕사이트는 몇 가족이 함께 왔는지, 11시가 다 되도록 아이들은 계속 떠들고 있고 남자 성인 몇몇은 텐트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계속해서 고기 굽는 냄새가 산바람을 타고 아래 사이트로 내려와 마을로 내려간다. 올라오는 길에 주민들이 사는 농가를 8채 정도를 지나왔다. 순간, 주민들이 이 캠핑장을 달가워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시 45분이 되니, 다시 한 명의 남자가 담배 연기를 뿜어낸다. 분명 10시쯤 그 사이트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는 두 명의 남자에게 금연 혹은 장소이동을 부탁했었다. 동시에 내 머리에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강화도 막걸리를 한 두어 잔 마신 나는 벌떡 일어나 그 사이트로 가고 말았다.

“아저씨!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연기가 산바람 타서 모두 아래쪽 사이트로 내려오잖아요!”

“아, 죄송해요! 그런데…. 그럼 어디서 피우죠?”

“캠핑 오셨으면 하루 정도는 안 피우셔도 되지 않아요? 자연을 즐기러 강화도까지 오신 거 아니에요?”

“아, 정말 너무 하시네….”

“너무 하다니요. 조금 전에도 얘기했는데 다시 연기가 날아오잖아요. 저희도 여섯 살 아이도 함께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흥분한 대화들이 오갔고 돌아서서 오는데 별 이상한 아줌마라는 식의 대화들을 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거기서 멈췄다. 늘 그렇듯 예민하지만 소심한 나는 온갖 생각들로 활활 타오르는 화롯불만 멍하니 바라봐야 했다.

‘나는 왜 말투가 전투적일까?’

‘다른 표현으로 동의를 끌어낼 수는 없었을까?’

‘왜? 이런 좋은 곳까지 와서 게다가 아이들도 데리고 왔으면서 담배를 피우지?’

‘어디서 피워야 하는지를 왜 나에게 묻는 거야?’

‘캠핑장 관리자는 왜 금연안내문이나 흡연 장소 안내를 안 붙여놨지?’

‘다음 캠핑장 예약할 때는 금연사이트인지를 확인해야 하나?’

‘아. 황금벌판이 똥색이 되었네!’

불편한 마음은 다음 날 아침까지 갔다.

 

서촌 골목
서촌 골목

나는 서울 종로구 서촌에 산다. 에어컨을 돌리는 여름이나 큰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면, 거의 창문을 닫는 일은 없다. 산이 가까워 유독 가을이 빨리 오는 기분이다. 가을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누워있으면 평화롭기 그지없는 시간이다. 언제부턴가 주변에 음식점들과 블로거들을 겨냥하는 카페들도 늘어갔다. 동시에 산 아래 행복한 집안으로 담배 연기가 예상치 못한 순간 담을 넘는 뱀처럼 스멀스멀 들어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소나기라도 내린 듯 급하게 돌아다니며 창문을 모두 닫아야 한다. 관광객이 많은 동네에 살다 보니 집에 들어오는 골목골목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본다. 버려진 담배꽁초도 수없이 본다. 조용히 지나쳐도 보고 화도 내보고 교양 있는 척 금연안내를 해보기도 했다. 큰길을 피해 골목에 숨어서 피는데, 그 길은 오히려 사는 사람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지나가는 길들이다. 솔직히 이런 상황과 마주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버려진 꽁초는 식당 주인이나 건물 관리인이 언젠가 싫든 좋든 감수하며 치우는 것 같기는 하네….’

‘정말 저녁에 시원한 산바람만 맡고 싶다. 도시를 떠나야 한다고?’

‘나만 이렇게 냄새를 지독하게 느끼는 것일까?’

‘주변 사람들을 만나볼까?’

‘주민들도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있으니…. 어떻게 설득해나가야 할까?’

‘관광객이 사라진 시간에도 냄새가 나기는 하던데. 주민들이 집 밖에서 피는 냄새가 올라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네?’

며칠 전에는 집 주변 담배꽁초 사진들을 찍어뒀다. 종로구청을 찾아갈 생각이다. 금연안내문 혹은 협조문을 받아와서 주민들이 자주 다니는 골목골목에 붙여 볼 생각이다. 생각을 같이하는 이웃 주민들이 분명 있을 텐데, 찾아봐야겠다.

담배꽁초가 버려진 하수구
담배꽁초가 버려진 하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