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 서운한 생각이 들면, 삐지게 된다. 필자도 젊었을 때는 잘 삐졌다. 삐진다는 것은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될 때 나타나는 행동이다. 삐진 상태에서 나가는 말과 표정은 곱지 않다. 입을 삐죽거리게 되고,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거나 침묵으로 시위하기도 한다. 상대는 갑자기 변한 배우자의 행동을 모를 때가 많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꼭 표현해야만 알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표현하지 않은 것을 알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게 그렇게 늘 통하는 말은 아니다.
결핍된 애정을 채우고 싶은 욕구
상담에서 만난 30대 중반의 젊은 여성은 결혼 전, 계모와 사이가 안 좋았고, 아버지하고도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녀는 충분한 사랑을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자란 셈이다. 그런 사람은 결혼하면서 자연스레 배우자에게 결핍된 애정을 채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남편과 친밀하고, 따듯하게 소통하면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지내고 싶은 욕구가 크다. 그런데 남편 역시 불행하게도 엄마로부터 자랄 때 충분히 대우받고 자란 사람이 아니다. 남편의 엄마는 자녀를 사랑하고, 희생적이긴 했으나 자녀가 원하는 것을 해 주는 대신, 엄마 중심으로 아들을 키웠다. 아들은 결혼했지만, 지금도 엄마를 두려워하며 눈치를 보고, 아내보다 엄마를 더 챙겨야 할 정도로 운신에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남편이 아내의 결핍을 채워주기엔 한계가 있다. 열심히 아내를 도와서 집안일도 해 주고, 아기도 잘 봐주는 등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에 아내가 삐져서 침묵 모드에 들어가면 감당이 안 된다. 하루 이틀 아내의 기분을 물어봐 주고, 노력하지만 아내로부터 어떤 화해의 메시지가 오지 않으면 이번에는 남편이 삐진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아내 달래는 걸 하지 못한다.
부모가 불안하면 희생양이 되는 자녀
이런 상태에서 남편이 삐지는 건 더 무섭다. 왜냐하면 남편의 삐짐은 회의적인 깊은 삐짐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아내는 안 돼” 하는 그 삐짐은 남편의 일방적인 관점에 불과하다. 두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의 골에 며칠은 기본이고, 일주일, 이 주일 대책 없이 그렇게 소통 없이 지낸다. 그러면서 온갖 불행한 시나리오를 쓴다. 그들에게 아기가 있지만, 아기는 그런 부모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부모가 불안한 상태인데 아기가 행복하기는 어렵다. 지금 아내와 남편은 서로를 향해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서운한 감정 상태에서 빨리 헤어 나오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아내는 남편의 어떤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마음이 상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렇게 심각한 일이었을까?
내 말을 안 들어주는 배우자에게서 상처가 건드려진 아내
들어보니 아주 사소한 일인데 아내는 삐졌다. 아내가 삐진 이유는 남편이 아내의 말에 “알았어”로 대답하지 않고, 맞대응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 말에 고분고분 반응해 줄 때 자기가 사랑받는 것으로 인식하는 게 틀림없다. 아내는 자랄 때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그 결핍을 남편에게서 보상받길 원하는 마음이 있다. 남편이 자기 말을 잘 들어줄 때 행복을 경험한다. 그런데 내가 의지하는 남편이 내 말을 고분고분하게 수긍해 주는 게 아니라, 맞받아치니까 아내는 자기의 상처가 건드려진 것이다.
나와 다른 상대를 관용하고 견디는 힘이 약한 부부
남편은 왜 삐지게 된 것일까? 그는 아내를 달래려고 노력했지만, 아내가 받아주는 기미가 안 보이니까 실망해서 삐진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갭을 푸는 일은 자신과 상대의 욕구를 잘 알아채는 일이 필요하다. 비난 없이 자신들의 마음을 말로 잘 표현하면 원만히 풀 수 있다. 젊은 부부들이 나와 다른 상대를 관용하고 견디는 힘이 약해서 종종 자기 관점의 오류에 빠진다. 둘은 서로의 상이하게 자라온 환경을 이해하고, 자기의 욕구와 상대의 욕구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이들을 화해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일은 반복하여 일어날 것이다.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저절로 없어질 때까지 방치하는 건 결혼생활에 큰 리스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