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어린 집(凝香閣)
응향각리야유유(凝香閣裏夜悠悠)/향기가 어린 집 밤은 그윽하게 깊어만 가고
인의난간십이두(人倚欄干十二頭)/열두 난간 끝머리에 몸을 기대고 있으려니
양의만염무몽매(涼意滿簾無夢寐)/서늘한 심사 주렴 가득 잠이 오지 않는데
일지하엽우성추(一池荷葉雨聲秋)/연잎에 빗방울 듣는 소리 가을을 재촉하네
*마음의 교류
조선 선조~인조 때의 문인 이득원(李得元)의 시입니다. 그는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역관(譯官)을 지내면서 시문에 더욱 정진한 당대의 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마도 지나고 여름의 끝자락을 물고 오는 빗소리에 문득 연꽃이 개화를 합니다. 그윽하게 깊어가는 밤의 공기는 연꽃의 향기를 실어 나르고, 서늘한 기운이 도는 가운데 연잎에 듣는 빗소리로 가을이 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정취 속에서 시인은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때 시인과 갓 피어나는 연꽃이 한 마음으로 통하는 까닭입니다. 그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것은 바로 청각적인 이미지의 ‘연잎에 듣는 빗소리’입니다.
자연과 마음의 교류를 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사람은, 비록 언어로 시를 쓰지 않더라도 충분한 ‘시인’의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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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가을 #연꽃 #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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