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풍경(晩望)
이두조추후(李杜嘲啾後)/이백과 두보가 시를 읊은 이후
건곤적막중(乾坤寂寞中)/하늘과 땅은 적막하기만 하고
강산자한가(江山自閑暇)/강산도 스스로 한가롭기만 한데
편월괘장공(片月掛長空)/조각달 높은 허공에 걸려 있네
*하늘에 걸린 조각달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뛰어난 시인으로 알려진 이규보(李奎報)의 시입니다. 그는 시를 짓는데 천재적인 자질을 갖고 있어, 즉흥시에서도 당대에 겨룰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합니다.
시의 천재이므로 당연히 이규보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천재 시인 이백이나 두보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시는 바로 이백과 두보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하늘에 걸린 조각달을 바라보고 읊은 시입니다.
이백과 두보가 없으니 하늘과 땅도 적막하고, 강산도 적막하다고 시인은 읊고 있습니다. 높은 허공에 조각달이 걸려 있으나 그 저물녘의 기막힌 풍경을 이백이나 두보가 아니고 그 누가 읊을 수 있을 것인가, 묻고 있습니다.
마지막 연의 ‘장공(長空)’은 중의법으로 쓰인 것 같습니다. 즉 ‘높고 너른 하늘’이나 또는 이백과 두보가 살았던 저 중원의 ‘장안의 하늘’을 지칭하고 있다는 걸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여름의 저물녘, 하늘에 걸린 조각달을 보면서 시 한 수 절로 읊어보고 싶은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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