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 없이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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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없이 사는 사람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3.05.1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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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따듯하게 적셔주는 전래 동화

 

어느 산골 마을에 근심 걱정 하나 없이 사는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 부부에게는 아들 열두 명과 막내로 딸이 하나 있었는데, 모두들 결혼해서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남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노부부는 십삼 남매가 있어 노후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열두 아들네 집을 순회하며 살았습니다. 4년에 한 번씩 윤년이 돌아오면, 윤달이 있는 달에 하나밖에 없는 딸네 집에 가서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들 노부부를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뜻을 따서 노인의 별명을 ‘무수옹’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없을 무(無) 자에 근심 수(愁) 자를 써서 그렇게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들 열둘에 딸 하나를 낳기를 아주 잘했지?”

무수옹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낳아서 기를 땐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그래도 이렇게 길러놓으니 복 받을 때도 있구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지 않았소?”

무수옹은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근심 걱정이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근심이 없는 노부부에 대한 소문이 나라의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니, 그게 사실이오?”

임금님이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네, 근심이 없다 하여 ‘무수옹’이라 불리는 노인이 있다 하옵니다.”

신하가 대답하였습니다.

임금님은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신하의 말이니 믿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의심 가는 바가 없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한 나라의 임금 자리에 있으면서 호의호식을 다하고 있지만 하루도 근심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잘 것 없는 시골 노인이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지 그것이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여봐라, 그 ‘무수옹’이라는 노인을 불러 오거라. 어디 내가 한번 확인을 해봐야겠다.”

임금님의 명이 떨어지자, 신하들은 곧 무수옹을 한양으로 불러올렸습니다.

“무수옹, 대령입니다.”

신하가 임금님 앞으로 무수옹을 데리고 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들으니 노인장께선 근심 없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어째서 하루도 근심 없이 살아갈 수가 있소?”

임금님의 물음에 무수옹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였습니다.

“예, 저는 십삼 남매를 두었습니다. 모두들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으니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열두 아들이 한 달씩 돌아가며 부모를 돌보고, 윤년이 든 해에는 윤달이 되는 달에 딸이 한 달을 돌봅니다. 모두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하니, 근심 걱정 할 일이 없습니다. 잠이 오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심심하면 손자들과 노니 어느 하룬들 즐겁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같은 아들이나 손자하고 일 년 열두 달 같이 산다면 간혹 지루함도 쌓이겠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옮겨 다니며 사니 헤어지는 것이 서운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아들과 손자들을 만난다는 기쁨 때문에 곧 그러한 서운한 마음도 사라지고 맙니다.”

무수옹의 말에 임금님은 한동안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과연 그렇구려. 그것 참 아름다운 일이로군요. 보기 드문 효자들입니다.”

임금님은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다가 문득 심술기가 발동하여 무수옹에게 근심 덩어리 하나를 안겨주고 싶었습니다.

임금님은 신하를 시켜 구슬이 든 주머니를 가져오게 하여 무수옹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무수옹이 주머니를 받아들며 물었습니다.

“그것은 구슬이오. 내가 선물로 주는 것이니, 노인장은 그것을 가지고 가서 잘 간직하고 있다가 다음에 내가 다시 부르면 그때 가지고 오시오. 잃어버리면 큰 경을 칠 것이니 부디 잘 간직하시오.”

“예, 예.”

무수옹은 구슬 주머니를 받아들고 임금님 앞에서 물러나왔습니다.

임금님이 무수옹에게 구슬을 준 것은, 그가 정말 어떤 일에도 아무 근심 없이 잘 지내는지 시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뱃사공을 시켜 무수옹이 강을 건널 때 실수로 구슬을 강물에 떨어뜨리게 하라고 몰래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무수옹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강물 한 복판에 이르렀을 때 뱃사공이 무수옹에게 물었습니다.

“임금님을 만나고 오시는 길이라면서요?”

“그렇다네.”

“임금님이 무슨 선물을 주시던가요?”

“아주 신기한 구슬을 하나 주시더군. 바로 이것일세.”

무수옹은 자랑스럽게 구슬 주머니를 내보였습니다. 바로 그때 뱃사공은 배를 흔들어 구슬을 강물에 떨어뜨리게 만들었습니다.

“어이쿠, 내 구슬!”

무수옹은 구슬이 떨어진 강물 속을 들여다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무수옹은 끙끙 앓아누웠습니다. 그러자 열두 아들이 달려와 물었습니다.

“아버님! 무슨 일로 그러시니까?”

수심 가득한 얼굴로 무수옹이 구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다시 임금님이 부르실 때 구슬을 가져가지 못하면 큰 경을 칠 것이라는 데 큰일이 아니냐?”

“아버님! 걱정 마십시오. 걱정하신다고 잃어버린 구슬을 찾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1년 후의 일을 가지고 무얼 그러십니까? 그런 걱정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열두 아들은 무수옹을 이렇게 위로하였습니다.

“그래, 너희들 말이 옳다.”

무수옹은 근심걱정을 털어버리고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그때 강마을에 사는 딸이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아버님! 제가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가져왔습니다. 요리를 해서 올릴 테니 어서 드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딸은 부엌으로 들어가 칼로 물고기의 배를 갈랐습니다. 그런데 그 물고기의 배 안에서 구슬이 나왔습니다.

“바로 임금님이 내게 주신 그 구슬이로구나!”

구슬을 본 무수옹은 그때서야 근심이 싹 가셨습니다.

해가 바뀌어 임금님과 약속한 1년이 되자, 무수옹은 그 구슬을 가지고 갔습니다. 강물에 빠진 구슬을 물고기 뱃속에서 찾아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임금님은 껄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과연 효자들이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감동해 노인장에게 복을 내려주었구려.”

 

☞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근심이 없습니다. 반드시 일이 잘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 믿음이 기적 같은 복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