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모든 곳을 정신없이 오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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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 모든 곳을 정신없이 오간 이유
  • 박인철 기자
  • 승인 2023.05.16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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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쓰"

 

당신도 나처럼 아마 '모성'에 뭉클했을 것이다

남편이 외쳐댄 '친절'과 '평화'의 덕이 흐뭇하였고

老부부의 키스를 닮고 싶었을 것이다

 

이게 다 공부 열심히 한 죄

목표를  달성하려는 성실함 탓

중심문장을 고르고 주제를 찾아야 했던 우리들의 진지 강박이다

보이는 모든 것에서 아름다운 메시지를 찾는 슬기로운 감상생활, 습성 고운 자세다

 

그래서 처음엔 좀 황당하고 

그랬음에도 답답한 불친절한 작품이 있다

낯선 방식의 보여주기와 멀티버스니 평행 우주를 여행하는 점퍼를 위한 안내서도 없기에

스마트 세대만을 위한 영화 문법에 소외당했다는 불쾌감과 열등감과 그에 맞서는 투지보다는 

그저 취향의 문제로 

아무도 탓하지 않는 게 편하다고 맘을 비우렸다

 

헌데, 운명은 다시 마주치도록

남들이 상을 주고 의미심장하게 주고받는 눈빛을 눈치채고야 말았잖아, 자 자네

비껴간 이를 위해 마련한 재회의 기회를 낚아챔으로써

한번 선 보고 쌩까기엔 워쩐지 아까운 그의 유머와 화려함과 액션과 순수함을 나의 미숙함 탓으로 돌릴 정도로 우린 성숙했기에

 

결국 영화의 기술과 형식은 메시지와 별개의 것이 아닌 필요충분조건이리라 열린 자세를 취한 뒤

그러니까 이 곳이 아닌 다른 우주에서 다른 길을 걷는 다른 존재의 처지를 '한꺼번에' 섭렵한다면

그까이꺼 동성애든 입양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손가락이건 발가락이건

너구리든 족제비든

소원이든 충동이든

샤넬이든 입센이든 

맘보든 왈츠든

도넛이든 베이글이든 

돌이든 달이든

사랑일 수 있어라

사랑할 수 있어라

 

엉뚱하거나 더럽거나 혐오스러워야 건널 수 있는 그 사소함의 높이는

겨우 새끼 손가락만 하다네!

하매 님아, 그 강 앞에 두고 되돌아 가지 마소

양자경은 을매나 정신읎었것소, 이거 혔다 저거 혔다

대체 이것이 무신 영화인지 무신 역할인지 알고나 혔는지 달고나 혔는지

적어도 우리 배우자나 자식이 사네 못 사네,

죽네 마네 허지는 안 허들 안 혀요

 

이 생도 버거운데 다른 생을 어찌 알꼬 모르는 게 당연하다 

'올 앳 원스' 하려거든 첫 숟갈에 배부르랴 

업혀가다 지치면 업어서도 가 보고

장난감 눈알으로라도 다시 바라보기를

외면과 무시와 포기만 포기해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다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