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성적표를 매겨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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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성적표를 매겨본다면?
  • 박인철 기자
  • 승인 2023.02.07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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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을 보고

 

 

 

1. 삼행시 클럽

  삼> 행시 짓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혹시 희한하고 유치한 취미라고 얕잡는 마음이 생기진 않았나요?  단순한 석줄시가 아니네요. 겨우 세 명의 친구이지만 거의 날마다 시를 지어 발표하고 감상합니다.  형식만 빌렸을 뿐 시제를 쉽게(자기 이름 같은 걸로) 정하여 그 (시제의 운으로 시작한다는) 제약 속에서 자유롭게, 그 날의 일과 마음을 표현합니다.

 행> 여나 누구의 칭찬을 바란다거나, 나중에 책으로 묶어볼까 하는 딴 생각 따위는 없어요. 아이들은 제법 진지하고 자기들끼리 올해의 우수작을 뽑아 재감상할 따름입니다. 안타깝게도 고3학년이 되면서 잠정 활동을 중단하기로 하지만 그렇다고 무얼 탓하거나 분노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그냥 놀이니까요. 다시  시간이 나기를 기다리면 되니까요. 

 시> 계를 찾는 아이에게 정희는 제 손목에 찼던 것을 풀어주고는 수능시험 시간 내내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네요. 정말 시간이 나면 다시 운동장으로 아이들이 놀러 나올까, 정말 시험이 끝나면 시간이 생기는 걸까, 생긴다면 언제쯤일까, 그 때에도 지금처럼 시를 지을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나도록 풀 수 없는 문제가 남습니다. 

 

 

2. 도전 목록

 햇반으로 경단 빚어 먹기, 덤블링 배우기 등 세 친구의 다이어리에서는 도전거리도 발견할 수 있어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즉 버킷리스트처럼 진지해 보이진 않아요.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고 그렇게 소중하거나 거창해 보이는 일은 없어요.  그래서 '비오는 날 수영하기' 대신 '빗 속에서 물안경 끼고 자전거 타기'로 만족할 수 있었어요. 어릴 적 수돗물로 빗물놀이하던 기억까지 소환하네요. 그냥 재밌을 것 같은 일들의 목록이에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한다면 정말 웃음이 넘칠 것 같은, 엉뚱하기까지 한 일들이에요. 그냥 해 보는 게 목적인 일들 같아 보여요. 여행경비에 맞춰 '제주도에서 3시간 놀다 오기' 같은 것은 정말 황당한데도 너무 신나하네요. 그런데 대학 동기들과의 여행은 이들과 달라요. 놀이공원에서의 일정은 예정보다 너무 빨리 끝나죠. 그래서 숙박 계획을 취소하고 우정까지 깨뜨려요. 이 친구들이였다면 놀이는 어디까지나 놀이이므로, 틀어진 여행 계획과 남는 시간조차 행운이거나  추억거리였을 텐데요. 

 

 

3. 성적표

  정희는 온통 놀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놀러오라는 민영의 전화를 받느라 지갑도 잊었죠. 해외여행용 트렁크에는 장난감이 가득 나오고 게다가 검은 봉지에 배드민턴 채도 꼭꼭 챙겼네요. 버려진 상을 주워다가 책상으로 꾸미고 바쁜 민영이를 위해 소꼽놀이처럼 음식도 챙겨줘요. 말다툼을 벌이는 듯한데 자신이 원하는 놀이시간을 얻기 위한 말놀이로 보입니다. 혼자 남은 동안엔 민영이의 일기를 훔쳐보는 탐정놀이와 성적표를 쓰는 교수놀이를 하는 것 같고요. 

 마지막 장면까지 정희의 놀이 재능은 찬란하게 빛나 보입니다. 그리기 대회에 자기의 두 작품을 모두 입상시키죠. 그 그림속 "숲 속의 정령"을 민영의 얼굴로 그렸고요. 그러니까 심사위원들과의 머리싸움에서 이겼고 그림 놀이에서 승리했으며 수수께끼를 풀어보라고 하는 것이니까요.(출제자는 늘 답을 아니까 언제나 승자!)

 따라서 유정희의 놀이 성적표는 모두 A+를 주렵니다.  유머 점수, 놀이에 끌어 당기기, 냉정하게 전략 펴기, 혼자서도 잘 놀기, 흔적 남김없이 비밀 파헤치기, 상대방 배려하기, 역할놀이, 속이기, 상대가 아쉬워서 매달리게 하기(주도권 경쟁) 등등.

 

4. 스무고개 

 올 설에 무엇을 하고 노셨나요? 윷판을 그리고 윷가락을 얼씨구절씨구 뱅글 댕그랗게 던지면서 윷이요, 모요 기원하는 윷놀이를 하셨나요? 또는 두툼하지만 찰진 국방색 모포를 깔고 동양화가 요란하게 그려진 화투짝을 숨겼다가 판을 싹쓸이 하기도 하고, 되려  여기저기 짝패들을 쌓아 놓기만 하고 헛물만 들이킨 고스톱을 하셨나요? 게임을 할 적에 누구 목소리가 커지고 우스갯소리를 잘 섞었나요? 이것 저것 준비하기도 펼치기도 귀찮죠? 먹고 마시면서 이바구로 허튼 소리에다 여서저서 들었던 정보들을 과장 또는 변색하여 흥분하거나 웃음을 번지게 하셨나요? 이런 것은 누가누가 잘 하나, 말놀이 아닌가요? 이야기가 끊어지면 안되니까 끝말잇기랑 비슷한 거 맞지요? 음식을 준비할 때는 은근히 경쟁도 하지요?  누가누가 밤껍질을 잘 치나, 누구 송편이 예쁘고 쪘을 때도 안 터지는가, 동그랑땡은 어떻게 해야 타지않게 잘 굽나 등등이요. 다른 모임에서 무엇을 하고 놀자고 제안하시는 편인가요?  그 놀이는 먹기인가요, 여행인가요? 혹은 어떤 경기인가요, 관람인가요? 우리는 왜 이렇게 모이는 걸까요? 고대부터 사냥과 농사를 함께 했던 유전자가 아직도 남아 그 의례와 제의를 하는 호모 루덴스이기 때문일까요? 그저 인간적으루다 말하고 먹고 마시며 놀기 위해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