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으로서 드러나는 여성적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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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으로서 드러나는 여성적인 세계
  • 박인철 기자
  • 승인 2023.01.1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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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를 보고

 

 

 

 

 

 

 

 

 

 

 

 

1. 서로 기대는 게 사람(人)이라면서도

 아마 모창가수 아카데미와 클럽이었을 것이다. 사라진 윤시내를 찾아 연시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의 이름말이다. "가짜에게도 진실은 있다."는 구호 아래 그들은 송년 파티를 누구보다 흥겹게 보내고 있었다. 싸잡아 '짝퉁'이고 '짜가'라고 칭하거나 심하게는 '뒈져'야 할 '변태'이거나 비정상적 '잡놈'으로도 취급(?)한다. 실상 그들은, '덕후'이거나 '찐팬'이고 '직업적 연예인'이며 자신의 부캐를 향유하는 '일상적 축제자'로 재인식된다. 그리하여 선인권, 우승철, 이상흔, 서대지 같은 각자의 이름마저 진본 스타에 기대고 그렇게 알아채 주길 원하는 존재다.

 

2. 복제의 매력 혹은 장점이 있다면

 그러나 그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이미테이션이지만 반짝이는, 복제품의 매력이 있다. 그들끼리는 "짝짜꿍이 맞아서 좋아" 죽는 것이고 싸구려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B급 쾌감, 바로 솔직함이 있다. 진품이 가진 아우라나 원본이 가진 신비주의, 전설이 가진 경외 따윈 가볍게 떨쳐내고 그자리에 우스꽝스러움과 촌티와 친밀함으로 우리에게 손 내민다. 시장 호떡집에서 어깨 부딪혔던 삼촌과 이모, 동네 식당에서 인사하고 엊그제 집에 놀러왔던 아저씨와 아줌마. 그들은 친근한 동네이웃이다.

 

3. 이미테이션이 숙명?

 각자의 사연은 개인적이지만 이들이 이미테이션가수가 된 까닭은 숙명처럼 보인다. 예전 가시내는 새로이 백두리가 되어 자신의 음악을 하려 한다. 그의 노래는 관객의 빤한 시선에서는 나오지 못해서, 미끄럼틀이나 나무 뒤에 숨어서 봐 달라고 관객에게 부탁해야 한다.  그의 버스킹 장소는 겨우 시장통, 마을, 공원이다. 진품명품이 되기엔 미흡하고 어색한 것이다. 그제야 이들의 이름을 재검토해본다. 이왕이면 과장되게 '짜이'나 '김완성', '정인권"처럼 강하고 흠없이, 올바르게 지을 수도 있잖았나. 기왕지사 호가호위(狐假虎威)할 수 있음에도 이들의 선택은 수줍거나(샤이), 자는 척 눈을 감거나(잔인권) 숨하디 순하다(김완순).  그러니까 이들의 타고난 품성은 여성적이라고 하겠다.

  

 

4. 여성적인 것들의 숙명

  우리 일상에서 여성적이라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주연의 뒤를 좇다가 빈 자리를 메꾸는 조연이나 비정규직이다. 결정하기보다는 따르는 자이고, 제안하기보다는 호응하며 추진하기보다는 탐색한다. 남과 갈등하기보다는 그를 배려하고 나를 주장하기보다는 너를 느낀다. 마음보다 환대하고 제 성질보다 움추린다. 이들의 승용차는 당대의 경차이고 지방의 국도나 골목을 헐떡이며 헤매인다. 이들의 음식은 국밥이나 호떡 등 서민적이다( 영화 속에서 순이가 마신 술은 자신이 담근 인삼주다). 이들이 머문 곳은 모텔이나 다인실 병원이다. 숨거나 숨기느라 이들의 서사는 어쩐지 스릴러쪽이다. 마침내 탄로나고 패배에 이르느라 통쾌함보다는 우스꽝스러워지는, 씁쓸한 코미디가 된다. 

 

5. 주체적이고도 독립적인 여성적 사랑

   엄마 순이와 딸 장하다가 어깨춤 들썩이며 화해의 노래로 신나게 부르는 <벗어나고파>.  이 노래가 윤시내의 진심이라면 이들에게는 그저 크게 소리지를 수 있는 명분과 대사다. 그것은 아마도 '여기 조명이 흐린 그늘에도 대단치 않지만 사람이 살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이들과 더욱 잘 어울리는 노래는 <열애>다.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그대 향한 그리움//그대의 그림자에 쌓여/이 한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이 생명 다하도록/뜨거운 마음 속 불꽃을 피우리라//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열애, 전문)

 

 주는 사랑을 받아 열락에 빠진 것이 아니다.  내 귀한 사랑을 받으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별처럼 찬란'하고 '꽃처럼 영롱한' 나의 사랑에 응답하라고 보채지 않는다. 사랑에 있어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을 원료로 기껏 만들어 낸 것이 '그대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 그림자의 열은 뜨거워지고 자체 발화하고 발광(發光)하며 그 후로도 사그라들 줄 모른다. 이 사랑은 "자기 세계를 가졌다." 그러므로 자체 완결되고 이윽고 하나의 생명(우주)을 잉태한다. 장하다, 여성(스러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