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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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 영화
  • 박인철 기자
  • 승인 2022.12.19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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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연출하고 떠벌이와 깔끔이가 함께 쓰고 "그린북"

 "아내가 연출하고, 떠벌이와 깔끔이가 함께 쓰고 <그린 북>"

 

<그린북>을 읽는 당신에게

 

 큰눈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환호성을 올리거나 난감한 표정과 더불어. 생업에 지장을 받거나 시간에 쫓기는 이들 등 몇몇을 제외하면 , 최소한 바쁜 도시의 일상에서 특별히 기쁠 일 없는 힘겨운 이들에겐 축복처럼 위로가 되고 저절로 명상에  빠지듯 차분해지기조차하는 자연의 신비입니다. 온 우주에서 오직 이 곳 지구에서만 벌어지는 신비. 분쟁과 미움과 차별과 힘겨운 노동과 억울한 죽음이 때때로 누군가를 슬픔 안에 가둘 때 눈을 들어 밖을 보게 하고 여기 이러한데 거기 어떠냐고 소식을 전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서로 다른 듯하지만 그리 다르지 않은 이들을 여기 늦가을에서 초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둔, 좀 쌀쌀한, 따스함이 그리운 때로 모십니다. 모두 환영합니다. 

 

1p. 거래 혹은 게임의 왕 토니

 술집의 문지기이자 해결사 '떠벌이 토니'는 소지품 보관소 아가씨를 난처하게 합니다. 손님이 소중하게 보관해 달랬던 모자를 내놓으라니까요. 그는 그런 식으로 돈을 법니다. 얘들 마냥 햄버거 먹기로도 내기를하고 동전 따먹기(?)도 합니다. 정당한 거래가 맞는지 의심됩니다. 

 운전기사 겸 로드 매니저를 구하는 박사와의 계약도 알고보면 그의 흥정에 휘말려 이뤄집니다. 그는 게임에 도가 텄습니다. 셜리박사의 짐을 트렁크에 누가 넣느냐는 기싸움부터 칼을 든 패거리나 경찰을 상대해도 능란합니다. 그의 기술은 빠른 총잡이술 뿐만 아니라 이런 사내들이 보통 그렇듯이 표정과 말만으로도 상대를 움찔하게 만드는 구라와 배짱입니다. 

 

2p. 피아노의 천재 혹은 깔끔 대마왕 돈 셜리

 박사의 말투는 건반을 두드리는 듯 딱딱하고 분명합니다. 예의바르고 옷은 단정하게 차려 입습니다. 피아노 연주 솜씨는 그보다 더욱 우아하고 화려하고요. 사생활에서도 일관되는데 불편을 준다면 이혼도 어렵지 않고, 끈적이는 게 싫어서 혼자 있는 것을 즐깁니다.  더럽혀질까봐 손대지 않았던 켄터키 후라이드치킨을 (토니의 기습적 권유에 밀려 어쩔 수 없이)뜯어 먹고 뼈다귀는 창밖으로 던집니다. 그런데 콜라컵 쓰레기는 다시 줍게 하네요. 둘 차이는 뭐길래? 박사는 토니의 (선물의 집) '가게 앞 행운의 돌 습득' 건에 대해서도 좀 과잉반응하는데 명예- 명성에 관련되었기에 민감했을까요? 

 아마도 '흔적'과 관련하는 것 같습니다. 멀리 날아가 풀숲에 가려지는 것과 달리, 던져지지 않아서 도로에 흔적이 남는 쓰레기는 버릴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도난 사고에 휘말려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일 따위는 지저분한 일이 될 테니까요. 남의 (입과 손에 묻는 치킨 기름의)더러움에 대해서는 혐오 정도는 아니고 다만 자신의 손에 묻는 기름과 닦아야할 일을 꺼리고 귀찮게 여겨 굳이 하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마디로 '깔끔 대마왕'입니다. 

 

 

3p.  편지(쓰기)의 의미 그리고 비밀

 

 편지를 써 보내 달라는 아내의 부탁(혹은 명령)에 장거리 전화 비용보다 싸다는 걸 동기로  토니는 날마다 편지를 씁니다. 박사는 그가 전투하듯 쓴 편지를 (아내에게 쓰는 편지답게 우아하고 낭만적으로)고치도록 받아쓰게 하고, 감을 잡았는지 검사합니다. 마침내 아내와 가족들은 그 편지에 감탄하고요. 

 보통 편지는  첫째 '고백', 둘째, '질문'으로 이뤄집니다. 토니가 고백할 것은 자신의 영웅담이고, 질문할 것은 아내와 가족의 안부입니다. 영웅담이 성공하려면, 동행자는 훌륭할수록 좋고 모험은 심란할수록 좋습니다. 언뜻, 토니의 고백과 질문은 그의 아내에게만 향한 듯 비춰집니다. 하지만 셜리 박사에겐 남의 편지를 빙자한 사랑고백입니다(요청 없음에도 굳이 끼어들어 대필한 것은 남의 편지를 빌어 자신의 아내에게 고백과 질문을 하고팠던 것으로 보입니다). 편지의 비밀은 이 두 가지 외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4p. 여행의 준비물 혹은 결과물

 편지는 어쨌든 기록입니다. 정직한 남편인 토니에게 굳이 글쓰기를 시킨 이유는 부인만 알고 있을 겁니다. 어떤 경험은 해 보기 전까지는 대체 왜 하는지, 무엇을 얻는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여행이 끝난 뒤 토니가 얻은 것은 셜리와 우정 등등 뿐만이 아닙니다. 동화 <프린들 주세요>의 담임선생님처럼 토니의 아내는 훌륭한 교사입니다. 게다가 가장 뛰어난 게이머입니다. 토니는 설마 아내가 자신에게 게임을 건다고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자신도 호락호락하지 않을 테니까요. 타짜는 상대가 당한 줄 모르게, 당하고도 기분 좋게 수를 겁니다, 토니 자신이 박사에게 했듯이. 그녀는 남편에게 글쓰기의 매력을 가르친 것입니다.

 되돌아 봤을 때 여행을 여행이게 한 것은 떠남입니다. 돈이나 깨달음 등 그 표면적인 필요성이야 무엇이든, 용기를 발휘하여 위험을 작정하고 여행한 박사와 이를 뒷받침한 토니의 힘은 떠남으로써 얻은 것입니다. 어떤 안주보다 짭잘한 것은 자신의 땀입니다. 칼인지 펜인지 꺼내보아야 알고, 썰든지 쓰든지 써 봐야 쓸 수 있습니다. 깔끔한 도마가 필요한지, 달콤한 은유가 부족한지 그걸 발견하는 기쁨도 쏠쏠합니다. 그렇다면 "낮에는 베고 밤에는 쓰라"는 메시지가 도드라져 나오는 듯합니다.

 

  당신의 소중한 친구로부터

 

  추신. 

 민감하신 분은 이미 눈치챘겠네요.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안내 책자입니다. (제목이 <그린북>이잖아요!) 아직도 소설 또는 '토니가 쓴 편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참 죄송합니다. 이렇게 안내책자를 위한 안내글까지 필요하게 한 것은 전적으로 집필진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고단할 1950년대(?) 아메리카 남부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 글을 읽으실 분에게 읽는 동안 마치 미리 여행을 다녀온 듯한 즐거움을 드리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습니다.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 고 박원순시장님의 카메오 출연 용기에 경의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