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에(初冬作贈劉景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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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겨울에(初冬作贈劉景文)
  • 曠坡 先生
  • 승인 2022.12.1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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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한시 한 수

                             초겨울에(初冬作贈劉景文)

 

하진이무경우개(荷盡已無擎雨蓋)/연꽃 다 져서 비를 떠받쳐줄 덮개 없는데

국잔유유오상지(菊殘猶有傲霜枝)/국화 시들어도 서리 업신여길 가지 있네

일년호경군수기(一年好景君須記)/그대 일년 중 풍광 좋은 경치 기억해두게

정시등황귤록시(正是橙黃橘錄時)/등자 노랗고 귤 초록으로 물드는 이때에

 

 

*생명력의 위대함

중국 송나라 때의 명문장가 소식(蘇軾)의 시입니다. 제목에 나오는 유경문(劉景文)은 소식의 친구인데, 내용을 음미해보면 그를 위로하여 지은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구와 2구는 대구로 되어 있으며, 초겨울의 쓸쓸함을 절묘하게 읊고 있습니다. 연꽃과 국화의 모양만 보고 이렇게 초겨울의 풍광을 칼로 오려내듯 묘사해내는 시적 감수성이 매우 놀랍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4구의 반전입니다. 한겨울에도 가지에 매달려 꿋꿋함을 자랑하는 노란 등자 열매나 초록의 귤을 등장시켜 생명력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계절 중 어느 한 계절 아름답지 않은 풍광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생명이 생장을 멈추는 겨울 풍광 중 유독 가지 끝에 매달린 노란 등자 열매와 초록빛 귤은 마치 ‘겨울’이란 계절이 두 눈을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시인이 보기에 그 생명력이야말로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