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의 씨름판 혹은 야바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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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의 씨름판 혹은 야바위판
  • 박인철 기자
  • 승인 2022.12.12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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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의 독립투쟁

1.영화는 게임이다!

 아들과 아비는 같은 속옷을 입지 않는다, 같은 스웨터는 입을지언정. 속옷은 사적이다. 그런데 왜 이 두 여자는 같은 속옷을 입을까? 둘 사이가 그렇게 좋지도 않다. 아니, 거의 웬수다. 징징댄다고 엄마 수경은 다 큰 딸 이정을 두들겨 팬다. 폭력을 피해 나간 딸을 향해 “죽어버려”라는 말이 잇새로 갈려 나온다. 자동차가 달려 나가 딸을 친다. 수경은 자동차 급발진이라고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 이정은 반대편 증인으로 나선다.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자신을 미워한다고, 사고가 아니라 의도라고!

 오징어 게임 이후 그 아이디어와 발상법으로 영화를 보면 웃기기도 하고 쉬워지기도 한다. 각 갈등 장면이 일종의 게임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추격전은 술래잡기가 되고 추리극은 숨바꼭질이다. 연예는 늘 밀당임으로 일종의 씨름이다. 좀비 영화는 전형적인 술래잡기다. 영화 속에서의 거짓과 사기는 홀짝(일명, 짤짤이) 구슬 게임과 같다. 어느 컵 속에 진실이 담겼는지 알아맞히는, 야바위가 펼쳐진 것이다. 그들의 게임을 바라보는 관객은 사실 당사자들보다 흥미롭다. 판돈이 크면 클수록, 내 것이 아님에도! 이 영화의 판돈은 좀 사소해 보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자기 인생을 건 것처럼 착시가 나타나기도 하겠다. 차분하게 속이는 게 더 무섭다. 어쨌든 이 영화는 씨름이기도 하고 홀짝이기도 하다. 그게 어느 관계에서 벌어지든.

 

 

2. 짝!

 두 여자는 신경전이 대단하고 장외에서 여론전도 활발하다. 딸 이정은 ‘하소연 전법’으로 관객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회식 장면이나 “그거 맥주에요?”(“라면 먹고 갈래요?”를 대신할 새로운 연대의 대사다!) 로 시작하는 식사 장면은 음식을 먹이고 속내를 게워내게 하는 도구다. 이때 방심하면 관객은 홀딱 속기 쉽다. 야바위꾼 주위엔 늘 바람잡이가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 영화에선 후배 문정희가 그 역할이다. “함부로 하게 놔두지 마세요”라는 그녀의 경고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살펴보자. 쉽게 ‘너 자신을 함부로 하지 말고 소중히 사랑하라’라는 뜻일 수 있다. 또는 ‘엄마나 타인(사장, 부장 등)이 자식이나 고용 노동자를 함부로 하지 않게 지키자’일 수도 있다. 영화에선 선배 이정에게 한 말이지만 관객도 같이 듣고 있다. 바람잡이는 오히려 구경꾼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 ‘관객은 함부로 이정을 동정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주인공 이정은 금방 후배 정희가 같은 편이라고, 친구가 된 것이라고 의지(혹은 의존)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바람잡이는 그녀의 편이 아니다. 관객은 헷갈린다. 이정에게 걸 수 없어졌다. 수경이에게 쏠린다. 씨름의 승부는 예전에 갈린 것으로 보인다.

 

3. 홀!

 뒤늦게 연애를 하는 수경 앞에 남자의 딸이 있다. 퉁명스럽다가 웃었다가 히스테릭한 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안 해”서 섭섭하다. 그나마 쪼그만게 벌써 자위기구를 가지고 있다니 기특하다. 남자와의 ‘헤어질 결심’에 결정적인 것은 혹 같은 그 딸내미가 아니라 를 애지중지하는 남자다. 그 부(모)성애 때문이다. 양육을 분담 혹은 전담할 사람으로 고용될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 것이다. 수경은 ‘빨간 속옷’ 같은 생명 충동(리비도)에 충실히 하고자 하니까.

 

4. 사랑은 아이스크림처럼!

 영화가 쥐고 있는 구슬의 개수는 꽤 많아 보인다. 그러나 그 개수를 정확히 알 필요는 없다. 홀수인지 짝수인지만 알면 된다. 수경은 늘 홀(=독립)이고, 이정은 늘 짝(=관심)이다. 둘은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둘이므로 사랑의 방식도 둘이다. 어느 쪽에 걸 것인지는 관객 몫이다. 적어도 이 야바위꾼들(=배우들)조차 끝까지 짜 맞추진 않았다. 감독도 끝내 말로 하지 않는다. 깜깜해 보인다. (이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영화에서도 정전 사태까지 이른다. 그제야 손전등 빛에 의존하여 이정이 엄마를 바라본다. 수경의 몸은 아직 살아 있고 그녀들의 냉장고에는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그것은 차가울 때 먹는 것이다. 그래야 제맛이다. 정확히 말하면 살짝 녹아야 맛볼 수 있다(혹은 얼린 것을 녹여 먹는 것이다). 그렇게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면서도, “나 사랑해?”라고 이정이 묻는다. 수경은 시원하게 웃는다. 마치 낫 놓고 기역자 묻는다는 듯이. 혀끝으로 맛보면서도 맛있냐고 묻는다는 듯이. 아마 수경도 그때쯤 살짝 녹은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음미했을 것이다.

 

5. 편파적 독립전쟁의 끝!

 감독이 딸 이정과 동시대인인 것이 흠이다. 수경을 더 많이 바라보니까. 게임으로 보면 편파적이다. 처음부터 씨름판은 기울어져 있었다고 보인다. 수경의 분노는 급발진하지만, 그것은 정상적이라고까진 못해도 평범하다. 조곤조곤 설명하지 않았어도 충분한 말이 있긴 했다. “젖 줄까, 넌 어쩜 이렇게 자라질 않니?” 등.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말로 굳이 다 설명하는 방법 이외에도 방법이 많다. 눈이 발달한 인간에게 보여주기로 게임에 끌어들인 이 야바위(영화)는 충분히 성공했다. 입소문을 타고 더 많은 구경꾼이 몰려들길 희망한다. 사실 결과가 뻔했는데도 현란한 손기술과 이벤트 활동 덕분에(아리랑시네센터 GV 때) 떠들썩했다. 곳곳에 수수께끼를 여럿 던져놓았다. ‘방 탈출’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그 방이 은밀하고 노골적이다. 마치 여성 전용 찜질방 같다. 실제로 수경의 업소는 쑥 찜질방이다. 착취적 마사지를 받는 게 아니라 혼자서 온기를 쏘인다. 마늘과 쑥으로 천사가 된 여자들은 이제 쑥찜을 해서 배트걸이 되려나 보다. 그 날개 망토는 잘 자라지 않고 매달린 것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두 여자는 그래도 각자 팬티는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