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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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머슴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12.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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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해지는 전래동화

 

어느 깊은 산속 마을에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마침 그해 겨울에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와서 사람들이 사는 집의 지붕이 겨우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고목이 된 키 큰 느티나무만 벌판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집집마다 마을 청년들이 나와서 눈을 쳐냈지만, 사람들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길만 낼 수 있었습니다. 마을 가운데 우물이 있었는데, 집마다 그 물을 길어다 먹었으므로 가장 먼저 우물길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집과 집 사이에 길을 내어 사람들이 겨우 왕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폭설이 내리자 가장 큰 문제는 땔나무였습니다. 곡식과 물이 있으니 굶지는 않는다고 쳐도, 땔나무가 없으니 밥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을 청년들은 의논 끝에 마을 앞에 서 있는 고목이 된 느티나무를 베어 땔나무로 쓰자고 하였습니다.

마을 청년들은 도끼와 톱을 들고 느티나무를 베러 갔습니다. 그때 느티나무 근처에 살던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그 느티나무는 왜 베려고 하는가?”

“영감님, 마을에 땔나무가 없어 집마다 밥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눈이 너무 와서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갈 수는 없고, 천상 이 고목이라도 베어다 땔나무로 써야겠습니다.”

마을 청년들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그 나무는 안 되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야. 그리고 여름이면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니 얼마나 고마운 나무인가?”

그러나 마을 청년들은 이미 청년회에서 결정이 된 사항이므로 느티나무를 베어낼 수밖에 없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느티나무를 베기 전에 나부터 죽이게나.”

할아버지는 느티나무 밑동을 끌어안았습니다.

“영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시방 우리 마을 사람들 전체가 굶어 죽게 되었단 말입니다. 밥 대신 생쌀을 먹을 순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 느티나무는 안 되네. 고목이긴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닌가? 차라리 그렇다면 우리 집 행랑채를 헐어다 땔감으로 쓰게나.”

할아버지가 끝까지 버티자 마을 청년들도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감님, 정말 행랑채를 헐어다 땔감으로 써도 무방하단 말씀입니까?”

“행랑채도 쓸모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느티나무를 살리려면 그 수밖에 없질 않은가? 작년에 머슴이 살다 간 집인데, 지금은 비어 있어 당장 필요가 없으니 어서 가서 행랑채를 허물어다 마을 사람들 밥 지을 땔감으로 나누어주게나.”

마을 청년들은 할아버지네 집으로 달려가 행랑채를 헐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안방에 있던 할머니가 맨발로 뛰어나와 청년들의 팔에 매달렸습니다.

“여보게 젊은이들! 아니 멀쩡한 행랑채는 왜 허물고 야단인가?”

그때 할아버지가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여보, 저 느티나무를 베느니 이 행랑채를 허물어 마을 사람들 밥 지을 땔감으로 쓰라고 하였소.”

“영감, 정말 잘 하셨소. 산 나무를 베어내느니 죽은 나무를 헐어다 쓰는 게 낫지.”

정말로 그 할아버지에 그 할머니였습니다. 청년들은 감동하였고, 행랑채를 허물어 기둥과 서까래로 눈이 녹을 때까지 마을 사람들의 밥 지을 땔감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습니다. 행랑채가 없는 할아버지는 당장 걱정이 되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머슴을 구해야 하는데, 행랑채가 없는 할아버지네 집으로 머슴살이를 하겠다고 지원하는 젊은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머슴이 없으니 올해 농사를 어떻게 짓누.”

할머니는 시름에 잠겼습니다.

“걱정 마소. 내가 아직 힘은 쓸 수 있으니 사부작거리며 놀이 삼아 지어보겠소.”

할아버지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때 한 낯선 사람이 노부부의 집에 나타났습니다.

“제가 머슴살이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우리 집에는 당신이 머물 행랑채가 없는데…….”

할머니의 말에 그 사람은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그런 것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집이 가까우니 낮에 와서 일하고 밤엔 집에 가서 자면 됩니다.”

“대체 집이 어딘데 그러시나? 이 근방 사람 같지는 않은데…….”

할아버지도 처음 보는 사람이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머슴살이하기에는 좀 늙어 보였으나, 몸이 건장하여 농사일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 것은 너무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무튼, 잠자리 걱정은 마시고 저를 머슴으로 받아주십시오.”

낯선 사람은 아주 간곡하게 노부부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노부부가 오히려 간청해야 할 처지이므로 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낯선 사람은 노부부의 집에서 일 년간 머슴살이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일도 잘하였습니다. 가뭄이 들면 냇물을 끌어다 보를 만들어 물을 댔으며, 냇물이 마르면 땅을 깊이 파서 두레박으로 샘물을 퍼 올려 논물이 마르지 않게 하였습니다.

일 년 농사를 다 짓고 나서 할아버지는 머슴에게 새경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새경으로 주는 돈 꾸러미를 받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일이 없어 심심하던 차에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입니다. 더구나 먹고 입는 것을 해결해 주셨으니 제가 오히려 보답을 해드려야 할 처지입니다. 그러니 이 돈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아! 우리네 인정에 그럴 수는 없는 일이네. 자네가 일 년 동안 우리 집에 와서 일한 대가로 치면 적은 액수지만, 그래도 우리 내외의 성의를 봐서 받아가게나.”

할아버지는 억지로 머슴의 손에 돈 꾸러미를 쥐여주었습니다.

그다음 날 할아버지는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 옆을 지나가다 문득 가지에 매달린 돈 꾸러미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머슴은 바로 느티나무의 화신이었던 것입니다.

 

☞ 지극한 사랑 앞에서는 나무도 감동하는 법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끼고 보호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그것들을 지킬 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