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연극의 단정함과 솔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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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연극의 단정함과 솔직함
  • 박인철 기자
  • 승인 2022.11.26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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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초의 연극 "사춘기"와 "꿀벌귀신을 잡아라"

<사춘기> 를 누구보다 격렬하게 그러나 매우 꼼꼼하게 짚고 넘어간 등촌초 연극 동아리 귤꿈뮤를 환영합니다. 한 편의 영화처럼 동화처럼,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의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그 복잡한 변화과정에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그것은 결코 멋진 노래 솜씨와 그 속에 담긴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귀여운 안무 덕분만은 아니었어요.

첫 줄에 ‘격렬하게’라고 썼지만, 그것은 제가 느낀 크기와 속도이지 연극 속 어린이의 그것은 달랐어요. 몇 마디 대사가 어우러진 장면과 노래만으로 전해진 것인데 결코 요란하거나 극적이지 않았어요. 노래의 반주가 뒤에서 들릴 듯 말 듯 깔리고 그 위에서 어린이는 나지막히 속삭이듯이 노래했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그 나긋나긋함에 훨씬 집중하고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게다가 저는 이 ‘수줍고 나지막함’이 어린이 연극의 특징이라고 발견합니다). 그러니까 각 변화의 지점을 놓치지 않고 촘촘히 드러내되, 너무 장황하거나 격하지 않게, 필요한 만큼만 깔끔하게 말하고 움직인 거죠.

그러므로 이 연극은 명확하고 단정한 교복 차림의 학생이라고 비유할 수 있어요. 드라마처럼 말하면 ‘슬기로운 사춘기 생활’이죠. 이러한 방법과 태도가 이를 연기한 우리 아이들에게도 통해서 명확하고 단정한 말과 몸짓으로 표현됐음에 감탄합니다. “<사춘기>를 졸업”하고 성숙한 관계를 시작하는 결말을 결코 섣부르거나 이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에요. 감격한 아빠의 심정에 미소와 더불어 흐뭇하게 공감하며 이 귤꿈뮤 동아리의 세련된 비밀이 궁금해집니다.

 

 

<꿀벌 귀신을 잡아라> 는 학교 학예발표회용이기에 한정된 시간과 무대를 고려한 소품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커다란 무대에 공을 많이 들여서 배경이나 소리, 음악은 단순한 소품 이상의 것이긴 했지만요. 학교와 같은 다양한 관객층을 상대로 했기에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것은 저학년 어린이들의 호응인 해맑은 웃음소리가 증명합니다.

이 웃음은 무엇 때문에 터져나온 것일까요? 저는 솔직함이라고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웃음은 엉뚱한 행운에서 나오고, 우스꽝스러운 어리석음에서도 나오며 어떤 성공과 승리에서도 나옵니다. 성공과 승리는 장엄하고 극적이라 어린이의 웃음과는 좀 거리가 있지요. 아이들의 웃음은 엉뚱함과 우스꽝스러움에 밀접하고 그것은 본심이 솔직하게 드러났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무섭다고 벌벌 떨거나 용서해달라고 싹싹 빌거나 하는 솔직함. 궁금하다고 용기를 내거나 틀렸다고 인정하는 솔직함. 오해였다고 부끄러워하거나 ‘난 그저 외로웠을 뿐이야’라고 고백하는 솔직함.

 연극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솔직함’ 때문입니다. 안 그런 척 감추기도 하지만 슬며시 드러나는 본심을 엿볼 수 있으니까요. 가면을 쓰고 나타났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자유롭게 솔직한 인물이 되고, 자랑하고픈 마음을 당당하게 뽐내고, 말할 수 없던 고민을 빗대어 만인 앞에 털어놓는 솔직함. 그런 배우들을 보면서 함께 웃고 박수를 보내는 관객은 더불어 솔직해지기 때문이지 않나요?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실수도 어리석음도 함께 털어버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덧씌워진 ‘귀신’은 ‘요정’으로 변신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