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을 판 짚신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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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을 판 짚신장수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11.1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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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듯해지는 옛이야기

 

어느 시골 마을의 산자락 밑에 무너져 가는 토담집을 짓고 사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가을에 벼 타작을 할 때면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볏짚을 얻어다 짚신을 삼아 겨우 생계를 꾸려 나갔습니다. 또한, 봄이 되면 물오른 싸리나무를 베어다 삼태기를 삼아 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짚신장수였지만 마음만은 부자였습니다. 늘 천하태평으로 장터 마당에 주저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짚신과 삼태기를 팔았고, 장국밥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배꼽이 다 보이는 불룩한 배를 내민 채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낮잠을 즐겼습니다.

어느 날 장터 마당을 지나쳐가던 부자 영감은 천하태평으로 쿨쿨 코를 골며 자는 짚신장수를 발견하곤 문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시끌시끌한 시장바닥 한구석에서 참으로 맛있게 잠을 자는 짚신장수가 부럽기만 했던 것입니다.

사실 부자 영감은 그 고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돈이 많았습니다.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그 고을을 지나다니기가 어려울 정도의 대지주였고, 사시사철 광마다 쌀이 그득그득하였으며, 안방 장롱 속에는 값진 금은보화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때 부자 영감은 그저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채 늘 근심만 안고 살아갔습니다. 누가 자기의 땅덩어리를 떼어가지나 않을까, 집에서 부리는 하인들이 자기 몰래 광에 그득한 쌀가마를 뒤로 빼돌려 팔아먹지나 않을까, 밤에 도둑이 들어 장롱 속에 숨겨둔 금은보화를 훔쳐가지나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여보게!”

부자 영감은 짚신장수를 깨웠습니다. 어찌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몇 번을 깨워서야 짚신장수는 크게 하품을 하며 일어나 앉았습니다.

“아이쿠, 영감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부자 영감을 알아본 짚신장수는 얼른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고쳤습니다.

“거 입이나 좀 닦게.”

부자 영감은 짚신장수의 입가에 흐른 침을 바라보다 못해 딱하다는 듯이 츳츳, 혀를 찼습니다.

“아이쿠, 예예.”

짚신장수는 옷소매로 얼른 입가를 훔쳤습니다.

“저런, 츳츳!”

부자 영감은 짚신장수가 칠칠찮게 옷소매로 침을 닦는다고 또다시 혀를 찼습니다.

“그, 그런데 영감 마님께서 제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요?”

짚신장수는 아까부터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습니다. 가죽신만 신는 부자 영감에게 짚신이 필요할 리는 만무했던 것입니다. 또한, 삼태기는 그 댁 하인들이 직접 만들어 쓰기 때문에, 이 또한 필요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여보게! 저 말일세, 자네는 어떻게 그리 잠을 꿀맛처럼 잘 수 있는가?”

부자 영감은 정말 꿀맛이 생각나는 듯 침을 꿀꺽 삼키며 물어보았습니다.

“헤헤! 시간이 모자라서 그렇지, 잠자는 것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죠. 제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잠보였거든요.”

“잠보라? 자넨 그러니까 잠이 많은 부자로군. 나는 돈이 많은 부자이고. 그러니 내가 많은 돈을 주고 자네의 잠을 사고 싶은데, 팔 수 있겠는가?”

부자 영감은 흥정을 붙였습니다.

“네에? 자, 잠을 팔라고요?”

짚신장수는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자 영감 몰래 짚신장수는 자신의 엉덩이를 꼬집어보았습니다. 매우 아팠습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는데, 부자 영감이 눈앞에서 웃고 있는 걸 보면 현실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잠을 팔라니, 이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리였습니다.

“내가 삼백 냥을 줌세. 자네의 잠을 내게 팔게나.”

아예 부자 영감은 애원하다시피 하였습니다.

이때 짚신장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물었습니다.

“삼백 냥이라고요? 삼백 냥?”

“왜? 적은가? 그럼 오백 냥을 주지.”

“네에? 오, 오백 냥이요?”

짚신장수는 까무러칠 듯이 놀랐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5백 냥이나 되는 큰돈을 쥐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 생각이 바뀌기 전에 얼른 말하게나.”

부자 영감이 재촉하였습니다.

“네, 그, 그렇게 합죠. 오백 냥에 제 잠을 팔겠습니다.”

짚신장수는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부자 영감은 돈 5백 냥을 주고 짚신장수의 잠을 샀습니다.

짚신장수로서는 밑질 게 없는 장사였습니다. 아무리 비싼 값에 잠을 판다고 해도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잠을 잘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부자 영감이 준 돈 5백 냥을 받아온 짚신장수는 그날 밤부터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돈 5백 냥을 항아리 속에 넣어 안방 다락에 숨겨 놓았습니다. 잠을 잘 때는 도둑이 들까 봐 문고리까지 걸어 잠갔습니다.

그런데도 짚신장수는 마음을 놓고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그는 벽장 위에 올라가 항아리 속을 살펴보고 내려오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돈 5백 냥을 가지고 땅을 살까, 아니면 장터 마당에 큰 상점을 낼까, 이리저리 궁리하느라 말똥말똥한 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도, 짚신장수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더는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짚신장수는 항아리 속에 간직해 두었던 돈 5백 냥을 들고 부자 영감을 찾아갔습니다.

“영감님! 돈 오백 냥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제 잠을 되돌려주십시오.”

마침 부자 영감도 짚신장수를 찾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5백 냥씩이나 주고 잠을 샀는데도 한 달 동안 꿀맛 같은 잠 한 번 못 잤던 것입니다. 오히려 짚신 장수에게 준 5백 냥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배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부자 영감은 짚신 장수에게서 얼른 5백 냥을 받았습니다.

짚신장수는 다시 예전처럼 장터 마당에 나가 짚신과 삼태기를 팔았습니다. 돈 5백 냥을 부자 영감에게 되돌려주고 나자 잠도 잘 왔고,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짚신장수는 잠 잘 시간이 부족하였습니다. 밤에는 짚신과 삼태기를 삼느라 늦게까지 일을 하였고, 낮에는 장터 마당을 떠돌면서 그것들을 팔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짚신장수는 비로소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결코 행복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잠이 부족할 정도로 일할 시간이 주어져 있다는 것, 열심히 성심성의껏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마음이 편안하므로 꿀맛 같은 잠이 찾아오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다시 짚신장수는 장터 마당에서 장국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운 뒤 예전처럼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꿀맛 같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부자 영감은 자신의 재산을 누가 가로챌지 몰라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꿀잠 자는 짚신장수를 부러워하였습니다.

 

☞ 행복은 밖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외형적인 화려함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바로 자기 안에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