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연극이 보여주는 예의와 도전
상태바
어린이 연극이 보여주는 예의와 도전
  • 박인철 기자
  • 승인 2022.11.10 0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2 서울경기어린이연극잔치 관람기(3)

 

3.

 <폭풍우 치는 밤에> 는 두 친구의 우정 신호랍니다. 캄캄한 오두막에서 만나 목소리 이외에는 얼굴도 보지 못했기에 서로 알아보는 약속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 두 친구란 다름 아닌 염소와 늑대. 이들은 ‘어떻게’ 만나고 ‘어떤’ 하룻밤을 보냈기에 친구가 되었을까요? 이들을 만나기 위해 관객은 복도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길게 줄을 지어 섰어요. 안내하는 어린이의 지시에 따라 차분하게 극장으로 변신한 교실로 들어가 앉았지요. 어린이 관객을 위해 어른들은 자리없이 뒤쪽에 서서 역시 조용히 눈만 반짝였어요. 3학년 배우들은 관객으로부터 아주 가까이에, 매우 작은 무대 위에, 겨우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조용조용 작은 소리로 곱게곱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너무 큰 소리로 말하면 귀가 따갑거나 힘이 센 사람의 기운 자랑처럼 느껴질까 봐, 혹시 겁을 먹은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하는 것처럼요.
 바로 그거였어요. 염소와 늑대도 서로(의 목소리가 뜻밖으로 너무 낮거나 높은 데 대해 이상했지만) 예의를 지키고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거였잖아요. 배우들은 크게 나올 뻔한 비명도 작게 줄였고, 떨리는 목소리와 서두르고 싶은 마음은 진정시킨 뒤 천천히 말했으며,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행동했어요. 순서까지 잘 정하면 여럿이서 ‘염소’와 ‘늑대’와 ‘해설’ 단 세 역할을 번갈아 가며 조금씩 나눠서 할 수 있었겠죠. 관객만 볼 수 있도록 손전등을 희미하게 비춰 주었고 조금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늑대의 다리와 염소의 꼬리가 닿는 장면은 그림자로 대신했지요.
이 둘은 폭풍우 그리고 천둥과 번개의 난폭함 때문에 길을 잃고 시간을 놓쳤어요. 우리도 그런 건 너무 무섭고 싫잖아요. 평화란 친절에서 오고 그건 존중과 예의를 표현하는 것이죠. 전쟁과 같은 <폭풍우 치는 밤에> 더욱 간절한 것이고요. 이야기에 알맞은 그 방법과 태도는 여운이 오래 갈 거에요.

 

4.
 <운동장 아래 100층 학교>를 구경 가니 지도교사가 수줍게 부탁을 하셨어요. “우리 반 친구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달라.”고요. 이 학교는 땅속 깊숙이 묻혀있던 것이고 이제 막 꺼내느라고 아직 거칠다고, 부드럽거나 달콤하지 않다고 걱정하신 것 같아요. 누군가 편안하고도 가볍게 물어보기 전에는 꼭꼭 숨겨 둔 비밀처럼, 그러나 사실 그리 큰 비밀도 아닌데 괜히 말해봤자 사람만 실없어 보일까 봐 우리끼리만 간직하고 있는, 그러나 들키고 싶고, 말하고 싶은 비밀이죠. ‘정말 그런지 안 그런지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우리도 안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래도 우리 생각이니까 우리가 간직하고 싶다고, 우리가 확인하고 싶다.’라고 움켜쥐는 고집 같아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걱정하고 무시하는 어른이 잠시 모른 척해준다면 실험해보고 싶은 가출 같기도 하고 모험 같기도 해요.
 그래서 조금은 수줍고 조금은 멋쩍어 보이고 또 조금은 반항기도 보여요. 이렇게 속마음을 누가 물어봐 준 적도, 그걸 표현해 본 적도 드문 일이니까요. 그래서 조금 투박하고 조금 조심스럽기도 했지요. 이렇게 물어봐 주고 그래서 관객들 앞에서 보여주도록 기회를 가진 것은 그 자체로 모험이고 연습이에요. 더 구체적이고 더 세련된 모험과 실험을 위한 연습. 어린이의 목소리를 우렁차고 또렷하게 하기 위한 도전이었어요.
 지금은 아직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 게 자연스러운 때죠. 어쩌면 가장 어렵고도 도전하고픈 모험은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일 거에요. 그중의 하나가 연극이고요. 우리의 상상과 우리의 이야기를 연극 속에서나마 구체화해보는 것도 만만치 않잖아요. 교실과 연극은 우리 어린이의 모험 공간이에요. 그러므로 우리 어린이가 도전하고 실험하길 담임 선생님은 항상 기다리고 있어요. 깔아줄 멍석을 더 마련하느라 즐거우시겠네요. 원작에는 없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로 실현된 세계와 그 도전에 관객은 가슴 뛰며 환호할 수 있었어요.